외국에서 체류하는 사람들은 보험은 어떻게 하는지에 대한 의문 하늘라인의 하늘공간

얼마전 한국에서 유학생활을 하는 저의 태국지인이 몸이 아파 병원엘 다녀왔습니다. 갑작스레 아픈 상황이라 119를 타고 그 지역 큰 병원을 가서 피검사 및 CT 촬영까지 받았다고 하더군요. 다행히 뭐 심각한 병이 아니라 관절사이에 염증? 같은 것이 생겨서 심한 통증이 온 거라고 주사맞고 약만 받아 왔더군요.

그런데 병원비가 50만원이 훌쩍 넘는 액수로 나왔습니다. 태국에서 어렵게 온 학생이 저 정도 액수... 아마도 한달 생활비 보다 더 많은 금액이 1회 병원비로 나간 셈인데요. 다행히 유학생이라 의무보험은 가입이 되어 있는데, 선지불하고 후환급을 받는 방식이라 얼마나 환급을 받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제가 호주에 있을때 자전거를 주로 타고 다녔었거든요. 지하철이 없는 지역이라 다운타운까지 이동할 때 주로 자전거로 이동을 많이 했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저녁에도 이렇게 자전거로 귀가할 때가 많았었는데요. 늘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혹시라도 내가 사람을 치거나 지나가던 자동차를 긁으면 그 비용은 어떻게 지불해주지? 라는 생각이 늘 있었습니다. 

스트라이다 라는 느린 자전거이지만 사고는 예기치 못 한 곳에서 발생하는 법이거든요.
특히 저렇게 갑자기 차를 타려고 하거나 차에서 내리려고 문을 여는 사람이 있을까봐 늘 조심했었습니다. 

저는 또 위의 사진 부근에서 현지인 자전거를 탄 남자가 인도로 달리다가 지나던 행인을 친 상황을 직접 목격했습니다. 그래서 왠만하면 내가 위험하더라도 차도 위주로 다녔었구요..
가끔 저녁시간대에 자전거를 타고 가다보면 술마신 젊은 애들이 장난인지/시비인지 를 걸어 오는 경우도 있어서 늘 조심하려 했었습니다. 
태국에서 우핸들 운전만큼은 아니었지만, 호주도 또 교통체계가 우핸들체계라 차를 따라 주행하는 자전거도 약간의 적응이 필요했었습니다. 
다행히 시드니도 이륜차 보호에는 대만만큼이나 적극적이어서 한국이나 태국처럼 위험하지는 않았습니다. 

무튼 지금 생각해보면 그 당시 큰 사고 나지 않고, 의료비나 손해배상비용이 발생할 사건이 없었다는 것에는 지금도 감사를 하고 있습니다. 만약 그 때 제가 사람을 쳐서 그 사람의 병원비를 배상해줄 상황이 되었다면 그 나라에서 보험이 없었던 저는 얼마나 많은 금액을 지불해야했을지 상상이 가질 않습니다. 

사실 지금 한국에서도 이런 경우, 제가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사람을 치었을때 배상을 도와주는 보험이 없어서 이번을 계기로 이런 류의 보험 하나 정도는 들어 두어야겠다는 생각을 얼마전 태국지인의 병원비 상황을 보면서 하게 되었습니다. 

태국직원들과 함께 가 본 태국의 '콰이강의 다리' 외국계기업 태국주재원

오늘 현충일이라고 TV에서 영화 '콰이강의 다리' 를 해 주더군요. 아주 어릴적 TV에서 본 기억이 있는데, 당연히 너무너무 오래전이라 자세한 기억이 나지 않죠. 그래서 현충일 오전 '콰이강의 다리'를 다시 한 번 보았습니다. 아마도 현충일이라 케이블채널 등에서 전쟁영화를 해 주는 듯 하더군요.

잠시 영화 콰이강의 다리 에 대해 설명을 드리면...(저도 구글검색을 해 보았습니다)
1957년 영국영화이며, 2차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이 영국군포로들을 이용해 방콕에서 랭군으로 이어지는 철로를 만드는 공정 중 지금 태국의 칸차나부리 콰이Kwai 지역의 철로와 다리를 건설한 에피소드를 영화화 것인데요.
당시는 목재로 만들었는데, 전쟁당시 파괴된 후 태국정부가 재건설을 하였습니다. 
유속 느린 강의 풍경이 아름다운 지역입니다. 강가주변으로 카페나 레스토랑도 있어 풍경을 즐기며 식사도 즐길 수 있습니다. 굳이 여기 강 주변이 아니라도 이 마을 주변을 보니까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레스토랑, 펍 등의 골목이 있어서 며칠 방 잡아 놓고 여행도 하면서 즐기긴 좋겠더군요. 
주변으로는 이런 가게들도 있어서 군것질거리도 즐길 수 있습니다. 
야경도 멋지다고 하는데, 두 번을 방문하면서 야간에는 올 기회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현지인 지인들 이야기로는 밤에는 당시 여기서 사망한 건설포로들의 영혼이 떠 돌아서 오기가 꺼려진다고...
그래서인지 그 주변에 참전군인의 묘가 저렇게 있습니다. 
지금의 풍경은 당시 영화속의 풍경과는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하지만 한 번쯤은 가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저는 다음에 야간에 한 번 가 보고 싶네요.




한국의 농장/어촌 등에서 일하고 있는 태국지인의 생활 외국계기업 태국주재원

저의 태국지인의 지인이 있는데요. (어떻게 아는 태국친구가 있다보니 그 주변 사람들도 알게 되네요) 한국에서 농장이나 어촌 등에서 일을 하고 있더군요.

저도 기본적으로는 외국인노동자였고, 내 나라가 아닌 곳에서 일을 한 경험이 있어서 이런 사례들을 보면 관심도 가고 동정도 가고 그렇습니다. 

기본적으로 '외국에서의 생활' 에 대해 환상이나 긍정적인 부분을 상상하시는 분들은 대체로 외국을 여행이나 단기체류 정도로 해 보신 분들이 많을 거라 생각합니다. 저 역시도 캐나다 짧게 다녀 오고 나서는 흡사 내가 캐나다문화의 일부인 양 그 쪽으로 '동화同化'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던 시절도 있었으니까요. (이제는 그런 마음은 많이 사라졌습니다만...)
계속 어떤 일들을 하는지 관찰을 하는데요. 다양한 일들을 하더군요. 위의 사진을 보는 순간 제초작업(잡초제거)를 하는 일이구나 알 수 있었습니다. 농사일에서 잡초제거가 하나의 큰 일이거든요. 경상도 시골에서는 '피 뽑는다' 라는 표현을 썼었습니다. 

어린 시절 주로 방학때만 시골에서 지냈거든요. 그 당시에는 부모님이 맞벌이로 너무 힘드니까 방학만 하면 저를 시골할아버지댁에 보내 놓았습니다. 그래서 저의 기억속에는 방학=시골생활 이었습니다. 

당시는 어리니까 농사를 돕는다는 개념보다는 농사를 짓는 할아버지 할머니, 삼촌들을 따라 다니며 구경하고 잔심부름만 했었던 것 같네요.

주로 소나 염소 몰고 갔다가 오후에 데리고 오기. 새참 가져다 줄 때 함께 들고가기. 너무 어린 시절이라 다 기억은 나지 않지만, 추수시절에 할아버지가 논에서 독사 한 마리를 잡아서 거꾸로 매달아 독을 빼내고 있는 장면은 지금도 기억이 납니다. 

암튼 저는 농사를 지어 본 적이 없지만 성인이 되어서 몇 번 할아버지 밭농사를 도우러 간 적은 있습니다. 크게 보면 집안일을 하는 것임에도 하루 이틀 하고 허리가 끊어지는 줄.... 당시는 10대후반, 20대초반 신체적으로 가장 건장할 때였음에도 밭농사 하루 하면 정말로 허리가 끊어지는 줄 알았습니다. 정말 힘듭니다. 
지나갈때는 아름다웠던 이런 논/밭의 풍경들이... 직접 제가 뭘 수확을 하고 있으니 뭐가 그리 넓은지 일을 해도해도 끝이 안 보이구요.
허리 쪼그리고 심는 동작이나 뭘 뽑는 반복동작 하다보면 도대체 내 주변의 저런 할머니들은 어떻게 나보다 더 빨리 속도를 내면서 할까 라는 생각도 들고....

심지어는 제가 군대 휴가 나와서 할아버지밭에 양파뽑는 일을 도우러 간 적이 있었는데요. 그 당시에는 체격적으로 체력적으로 제 인생의 가장 상승기였던 순간임에도 농사를 짓는 근육은 또 다릅니다. 무엇보다 허리가 끊어질 것 같았다는 기억만 생생하게 남아 있습니다. 

주변에 풋앗이의 개념이었는지, 돈을 주고 고용한 인근 할아버지 할머니들인지는 몰라도 저보다 더 능숙하고 빠른 속도로 하나의 고랑을 작업하는 걸 보면서 깜짝 놀랐었습니다. 
다시 태국지인의 지인 이야기를 해 보면요. 

들어보니 하루에 80,000~90,000 정도를 받는 것 같더군요. 새벽부터 나가서 해가 있을 동안 일을 하고 80,000~90,000원... 사람심리라는 것이 또 간사해서 지금 내가 받는 수입을 일당으로 환산을 해보게 되더군요. 나는 사무실에 앉아서 컴퓨터로 문서 몇 개 만들고 고객사에 품질관련 욕 몇 번 얻어 먹고 얼마나 받나?

확실히 저 금액보다는 훨씬 많이 받더군요.

그래서 부모님이 공부 열심히 해서 펜대 잡고 일하는 직업을 구하라고 했구나 라는 생각이 머리속에서 안 떠오를 수가 없는 상황입니다. 
또 점심은 안 주는지 여러 국적의 외국인 노동자들이 있는데 다들 도시락을 싸와서 자기들끼리 먹는다고 하더군요. 아마 국적별로 모여서 점심을 먹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이전에 캐나다와 호주에 있을때도 어떤 유학생들은 휴일이나 시간날때 농장가서 파트타임해서 생활비 충당하는 친구들이 있었거든요. 이전에 밴쿠버 있을때 같은 유학원의 한국인 여학생이 있었는데, 주말에는 늘 한국인이 하는 노래방에서 파트타임을 한다고 하더군요. 수입도 꽤 높았다고 자랑을 하던게 너무나 부러웠던 적이 있었습니다. 

외국에 유학을 한다고 다들 부모님의 돈이 많은 것도 아니구요. 특히 단기어학연수 온 친구들 중에는 정말 돈이 없어서 좀 위축되어 보이는 친구들도 있었습니다. (사실 제가 중국과 캐나다 있을때 경제적으로 많이 어려운 상황이어서 생활이 자유롭지 못 했었죠) 그 때는 사회물정도 잘 몰라 파트타임 일 하면 불법이라고 생각해서 엄두도 못 냈었는데, 지나고 나서 보니 또 암암리에 파트타임 하는 학생들은 다들 하더군요.

호주에 있을때 보니 너무나도 많은 (이라고 쓰고 거의 대부분의) 학생들이 그냥 암암리에 일들을 또 하고 있더군요.

돌이켜보면 외국에서 돈이 없어서 돈 벌어가며 공부하는 학생들도 많았던 것 같았습니다. 제 초등학생 친구녀석 하나는 부모카드로 캐나다에서 생활했었는데 카지노에서 7천만원인가 썼다며 무용담처럼 이야기 하는걸 듣고는 딴 세상 이야기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습니다. 

태국에 가면 미얀마인 외국인노동자들이 태국사람들이 하기 싫어하는 업종에서 저임금으로 일을 많이 하고 있구요. 한국은 이미 많은 저임금 국가의 노동자들이 일을 하고 있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거시적인 입장에서 보면 사회적문제, 임금문제 등등의 각종 문제점들이 있겠지만, 미시적으로 보면 다들 힘들고 어렵게 살아가는 삶일 거라는 생각을... 최근 태국지인의 지인 삶을 보면서 느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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