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자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지 않는 아버지 (10) 외국계기업 태국주재원

저의 아버지와 이번에 여행을 다니면서 또 한번 느낀것이지만, 나이가 드니까 자신만의 고집이 있어서 다른 사람의 조언을 잘 안 듣더군요. 저의 아버지도 전형적인 본인 고집으로 평생을 살았던 사람이라 가족들과 마찰이 없진 않았죠. 그게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어느 정도 자식의 말도 듣고, 이제는 자식에게도 양보도 좀 하고 해야 하는데, 이상하게 나이가 많아지면 자신만의 아집이 더 강해지는 경향도 있습니다. 

나이가 들면, 내 생각이 다 맞지 않았구나, 라는걸 깨달을 만도 한데, 그게 잘 안 되는 것 같았습니다. 
웅장한 금빛탑이 있는 절이었습니다. 언덕 위에 있어서 그 웅장함을 더 해주는 느낌이었는데요.

아래쪽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이 곳까지 조금 걸어올라 왔습니다. 이번 여행을 하면서 항상 조금 멀리 걸어야하는 코스가 있으면 아버지와 아내에게 이야기를 합니다. 

"긴팔 자켓과 물병 하나 꼭 챙기세요"

그러면 꼭 아버지는 한마디 합니다. "뭐 춥지도 않은데, 뭐하러 긴팔을 챙기노?"
그렇게 이야기를 할 만도 한 것이 주차장에서의 하늘은 저랬으니까요. 살짝 덥기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여행내내 비가 자주 내렸었고, 제가 태국에 오래 있어보니까 비가 갑자기 내리는 경우도 많았으며, 실내에 들어가면 에어컨으로 온도가 상당히 춥습니다. 그래서 저는 가급적 가방에 긴팔 바람막이나 긴팔 셔츠를 하나씩 챙깁니다. 실내는 정말 춥습니다. 

홍콩가면 사람들이 긴팔 가디건을 입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그 사람들은 외부온도가 추워서가 아니라 실내가 너무 추워서이거든요.
그리고 저는 야외활동을 하게 되면 항상 물을 휴대합니다. 어떻게 될지 모르거든요.

저는 중국에서 생활을 하면서 사람이 어떤 예상치 못 한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경험을 많이 해서 늘 물 하나 정도는 휴대를 했습니다. 버스가 산 중턱에서 고장나서 장시간 멈추는 경우도 있고, 작은 슈퍼 하나라도 있겠지 라고 생각했던 시골지역에 들어갔다가 슈퍼 못 찾아 갈증에 고생한 적도 있고 해서 늘 미리 준비를 하는 습관이 있습니다. 

또 제가 물을 좀 자주 많이 마시는 경향도 있습니다. 어쨌든 물 하나 정도 챙겨서 나가라고 해도 꼭 토를 달고 안가지고 가려 하더군요.
절은 전체적으로 금빛으로 웅장하더군요. 올라와서 볼 만 했습니다. 
저는 태국에 있으면서 이런 절에 많이 와 봐서 아주 특별하다는 느낌은 없었는데, 아버지와 아내는 또 나름 이런 느낌의 절을 자주 접해보지 못 해서인지 흥미로워 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절을 다 둘러보고 내려가려는 즈음에...
이 풍경을 한 번 감상후 내려가려고 하는데...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하더군요.

위의 두 사진의 시간정보를 보니 딱 1분 차이네요. 1분 상간에 비가 내리기 시작해서 어쩔 수 없이 건물 아래에서 조금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만약 건물을 빠져 나가 내려가는 길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면 어쩔 수 없이 비를 맞고서라도 주차장까지 갔을텐데, 처마아래에 있으니 그냥 비 그치고 가자 라는 분위기가 형성이 되었습니다. 
비가 내리기 시작하니까 배낭여행객들은 비옷을 입기 시작하더군요. 우리는 차량으로 이동을 해서 소지품은 차에 두고 내렸죠. 그런데 저는 바람막이 긴팔은 챙겨왔는데, 아버지와 아내는 그냥 입고 있던 반팔로 왔더군요.
비가 꽤 오랜시간 그치지 않더군요. 그리고 비가 너무나 많이 내리니 어설프게 주차장으로 가기도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여기에 고립이 되어 한참을 기다렸습니다. 
비옷이 있는 사람들은 저렇게 이동을 했는데, 저희는 계속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아내가 추워 하는 것 같더군요. 비록 더운 날씨지만 이렇게 비가 내리면 체온이 많이 떨어집니다. 그래서 등산할 때 날씨가 좀 더워보여도 체온을 보호할 수 있는 비상용 옷등을 휴대하라고 하는 이유가 산의 기온은 변화의 폭이 크기 때문이죠.
그래서 (저도 좀 추웠지만) 바람막이를 아내에게 주었습니다. 

그런데 기다리다보니 아버지가 계속 비를 맞더라도 차로 가자고 독촉을 하더군요. 그런데 이게 비가 너무 많이 내리니 주차장까지 가다가는 옷이 완전히 젖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아버지에게 조금만 더 기다려 보자고 했거든요.
나중에 알고 보니, 아버지가 엄청 추웠었다고 하시더군요. 이 사건 이후에 아버지를 관찰해보니 추위를 많이 타시더군요. 헬스를 많이 해서 체지방이 낮아서인지, 어째서인지 같은 온도임에도 저희보다 추위를 많이 타는 듯 했습니다. 저도 더위보다는 추위를 타는 편임에도 말이죠.

어쨌든, 제가 차에서 내려 이런 곳을 가게되면 항상 긴팔을 하나 챙기라고 이야기를 하는데도, 꼭 말을 잘 안들으시더군요.

저는 이런 여행관련해서는 경험과 경력이 좀 있거든요. 

이전에 아버지와 태국에 왔을때, 자동차로 이동을 했던 적이 있는데요. 아버지가 집에서 아메리카노 커피를 컵 한 가득 타서 마시려고 하더군요. 그래서 제가 "지금 차로 장거리 이동을 해야 하는데, 화장실 찾기가 좀 어려울 수도 있으니 커피 조금만 마시세요" 라는 말을 했음에도 머그컵 한 잔을 굳이 원샷을 하시더군요. 뭐 결과는 도중에 화장실 가고 싶다고...

저때도 느꼈었죠. 자식말 더럽게 안 들으시는 구나...
하여튼 저의 아버지도 이전에 비하면 고집이 많이 약해지긴 했지만, 여전히 자식말 잘 안 들으시더군요.

저는 이런 경험을 위한 인생수업료를 정말 많이 냈거든요. 30대초반 어린나이부터 뭘 해보겠다고 도전을 많이 하다보니 시행착오에 대한 인생수업료, 기회비용을 날린 것에 대한 인생수업료 등등 적지 않은 돈을 많이 지불했습니다. 경험을 위해서...

저는 또 성향이 무언가를 도전하고 시도해 보는데 겁이 없는 편이라 이것저것 혼자서 많은 걸 해 보았었죠. 거기서 축적된 경험과 노하우가 나름 있거든요. 

더운 날씨에 긴팔 챙기라고 하는 건, 다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것들이죠. 
여하튼 저 때 아버지가 저보고 '비를 맞더라도 좀 내려가자' 라고 했을때 제가 눈치를 채지 못 하고 '태국은 비가 확 내리다가도 금방 그칩니다' 라고 하면서 기다렸는데, 엄청 추워서 체온이 확 떨어졌었다고 하시더군요. (지금 생각하면 정말 미안합니다) 저의 바람막이도 아내에게 준 상태였고, 무엇보다도 아버지가 추위에 떨고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습니다. 
차를 타니까 히터 좀 틀어 달라고 하시더군요.  태국차량은 히터기능이 없는 차들도 많구요. 제 차는 히터기능이 있는 차량이라 처음으로 저 날 차량히터를 가동을 했었습니다. 

나이가 많으면 또 나이가 많은대로, 나이가 어리면 또 나이가 어린대로 경험/경력이 있는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자기 고집이 있어 꼭 스스로 시행착오를 해 봐야 아는 경우가 있죠. 똥인지 된장인지 찍어 먹어 보아야 아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제가 그랬으니까요. 저도 젊었을때는 내 생각과 내 주장대로 인생을 많이 살다보니 '시행착오를 통한 인생수업료' 정말 많이 냈습니다. 다행인건 그나마 그런 경험이 많이 쌓이다보니 요즘에는 저보다 나이 많은 어르신들과 대화를 하면서 그분들의 조언을 많이 듣는 편입니다. 과거를 통해 배워 나가는 거죠.
저의 아버지 이신대요. 그냥 너무 추워서 그러니까 비가 와도 내려가자고 했으면 저도 무슨 방법을 찾아서 내려가려고 했을텐데, 아버지도 자식에게 감정표현 잘 안 하시고, 강한 모습만 보이려고 하다보니까 차마 춥다는 말을 못 하셨던 것 같습니다. 또 저의 바람막이를 아내가 입고 있으니 혹시 춥다고 하면 아내가 입고 있던 바람막이를 벗어 주려 할까봐 일부러 말을 하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평소 아버지 성향을 봤을때...

이렇게 여행을 함께 하다보니 평소에는 잘 몰랐던 사람의 성격과 모습도 알게 되는 거죠. 

혹시 이 글만 읽으신 분들을 위해 도움을 드리면... 저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다 집을 나와 지내기 시작했으며, 그 뒤로도 대체로 분가를 해서 지낸 시간들이 많았으며, 부산에 살면서도 부모랑 함께 살기 싫어 자취를 했던 시절도 있었고, 부산을 떠난 이후로는 제대로 함께 부모님과 지낸 적도 없으며, 해외생활을 핑계로 명절에도 집에 잘 가지 않았었고, 30대 중후반에는 부모와 대판 싸우고 나서 거의 5년동안 전화 한통 없이 연락도 하지 않아 대략 4~5년째는 아버지가 술마시고 제 휴대폰번호를 지워 버렸다는 이야기도 있더군요.  그렇게 살다보니 부모가 어떤 삶을 살고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잘 몰랐습니다. 솔직히 별로 관심도 없었습니다. 

혼자 자수성가를 해 보겠다는 생각으로 인생을 살다보니 타인을 돌아볼 여유가 없더군요. 사업 1차 실패 후에는 하루하루가 전쟁을 하는 기분으로 살았습니다. 물론 사업을 할 때도 하루하루가 전쟁이었구요. 그런 와중에 저의 부모님의 고집스런 성격이 또 저와 잘 맞지 않아 더 연락을 하지 않고 살아 왔는데, 이제는 나이가 좀 많이 들었음에도 '노인네들의 고집은 변하지 않는군요'

이제는 제가 부모성격에 좀 맞추면서 살아야겠습니다.... 라고 또 글을 썼지만... 이번 여행때 아버지와 몇 번 싸웠는데, 이제는 제가 소리를 지르니까 아버지가 아무말 못 하는걸 보면서 좀 안 쓰럽기도 하더군요. 제가 20대때는 아버지가 소리를 지르는 역할이었고 제가 아무말 못 하고 야단맞는 역이었는데요. 

이젠 아버지가 소리를 질러도 무섭지가 않고 제가 소리를 질러 버리니 아버지가 아무말 못 할 만큼 다들 나이가 들었습니다. 

인생이 다 이런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