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민박손님 중 기억나는 중학생들과 신입의사분 대만 그리고 타이베이

제가 대만에 있으면서 했던 민박을 찾아 주신 손님들이 다양한데요. 찾아주신 분들도 많았고, 시간도 조금 흘렀고 해서 그 분들이 다 기억이 나거나 인상이 다 남아 있지는 않습니다만, 기억에 남는 손님들도 계시고 인상적인 손님들도 계십니다. 

그 중에 저 두 중학생... 친구인데 방학이라고 두 명이서 여행을 왔습니다. 부모님들께서 저에게 잘 부탁한다고 연락을 주시고 보내주셨는데요. 제가 중학생 때 저렇게 해외를 나갈 정도로 당돌하고 씩씩했었나 싶을 정도로 똑똑하고 여행 잘 하더군요.

저는 군대를 제대하고 처음 부산 --> 김포공항(환승) --> 토론토 를 갔었는데, 김포공항에서 어떻게 환승을 할 지 걱정에 당시 유학원 직원에게 계속 물어보고 확인하고 그랬었거든요.
제가 살던 대만 따즈의 뒷골목에서 찍은 사진인데요. 중학생때 방학이라고 해외로 자유여행을 보내주는 부모님의 마인드도 참 멋지신 것 같습니다. 대만에 있을때 고등학생 자녀들을 방학동안 해외배낭여행 보내는 걸로 저랑 상담을 했던 학부모님들이 계신데요. 그 당시 한참을 상담하고 계약금까지 걸고 하시다가 결국은 '마음이 안 놓여서 못 보내겠습니다' 라고 하셔서 계약금을 돌려 드린 적이 있는데요.

부모로서 자식을 보호해야하는 건 맞지만, 어떤 부모들은 자식을 너무 과잉보호하려는 분들도 계시고.

어떤 부모들은 학생시절 대학입시외에는 일체의 다른 행위를 못 하게 하는 부모들도 계신데, 학창시절 1~2주 해외여행 간다고 학교성적이 크게 뭐 달라질 것 같지는 않거든요.

아무튼 저 중학생 두 명이서 와서 머물렀던 기억이 나구요.  마침 저 두 중학생과 같은 기간에 숙박을 하신 이제 막 정식의사가 되신 의대생분이 계셨는데요. (위 사진에서 왼쪽에 계신 분)

아침에 저의 민박집 근처의 조식가게에서 모두 함께 조식을 먹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막 정식의사가 된 뒤 시간이 조금 있어서 대만으로 여행을 오신 분이신데요. 하루는 저랑 자전거로 여행을 하자고 하시더군요. 그래서 하루 함께 자전거여행을 했었습니다. (저 뒤 하얀색 스트라이다가... 저 분이 가지고 오신건지 지금 기억이 가물가물 한데요) 
이른아침부터 제가 자주 가는 자전거여행코스로 함께 달렸습니다. 
함께 배도 타고 타이베이 건너편까지 왔습니다. 저때가 대만의 겨울철이었고, 비도 부슬부슬 내려 약간 쌀쌀했었습니다. 

함께 여행을 다니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습니다. 이른 아침에 출발해서 해가 떨어지고 집에 돌아왔으니까요. 성격이 너무나 시원시원하시고 쾌활하시더군요. 

정식의사가 되기까지 해 온 노력에서 오는 고통과 받아 온 스트레스가 많았을 것 같은데도, 성격이 참 쾌활하고 털털하시더군요.
쉴 때는 또 저렇게 누워서 쉬시는... 

저 스트라이다 자전거가 동일한 거리를 가더라도 바퀴도 작고 기어도 없어서 힘이 더 들거든요. 스트라이다는 결코 장거리 주행용이 아니라서 힘이 많이 듭니다. 
늦은밤까지도 쾌활하게 스트라이다 여행을 하고 돌아왔었는데요. 저 여행때 찍은 사진과 영상으로 동영상도 만들어서 보내주셨습니다. 

그 중학생 두 명도 그렇고 저 의사분도 참 인상에 오랜 남는 손님인데요.

늘 그렇지만 헤어질때는 '자주 연락드릴께요' 라고 인사를 하고는 실제로 연락을 못 하고 지내며 살고 있네요. 

그 중학생들은 이제 대학입시를 앞두고 있을 것 같은데 다들 어떻게 지내고 계시는지 가끔 사진을 볼 때면 궁금하긴 합니다. 

마지막으로...

저의 부모님은 제가 국민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때 그야말로 대학입시외의 일체의 행위를 금지하게 했고, 매번 성적표를 검사하면서 몇 등이라도 떨어지면 그야말로 난리난리를 치는 분들이었습니다. 저의 어머니가 좀 극성이었죠.

성적표를 보면... 국민학교 4학년때까지는 올수올가 였고 반에서 늘 2등 정도 했었습니다. 그러다 국민학교 5학년때 "우" 가 몇 개 나왔는데 그걸로 또 난리난리 해서 그 당시 새벽에 저를 깨워서 방바닥에서 이불을 어깨까지 뒤집어쓰고(가정집이라 외풍이 심했습니다) 문제집을 풀게 했습니다. 저의 학창시절 기억을 돌이켜보면 성적표 받고 집에 돌아가는 날은 늘 우울하고 잔소리 듣고 혼날 생각에 가출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냥저냥 공부를 좀 하는 편이었거든요. 

제가 중학교 들어갈 때는 '반편성고사' 가 있었는데, 당시 60명이 육박하는 한 반에서 2등, 전교 19등으로 중학교를 입학했었으니까요. 그런데 부모가 매번 성적가지고 잔소리를 하고 혼내니까 공부에 급격히 흥미를 잃었습니다. 왜냐하면 반에서 2등인데 성적이 올라가기 보다는 내려갈 공간이 더 많잖아요. 그래서 중학교2학년때부터 공부에 흥미를 잃고 공부와는 담을 쌓았던 것 같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국민학교 5학년 학생을 새벽에 깨워서 이불 뒤집어쓰게 하고 앉아서 문제집을 풀게 할 정도로 그렇게 문제풀이가 중요한가 싶은데요. 

최근에 친구와의 여행글을 쓰면서 생각난 두 중학생 소개를 해 보았습니다. 


덧글

  • rumic71 2021/09/20 13:58 #

    저희 집은 그정도로 극성맞진 않았지만, 해외에 처음 나간 건 학업과 군역을 다 마친 뒤였어요..,
  • 하늘라인 2021/09/21 10:01 #

    극성이라는 단어를 보니까 당시 저의 어머니에게 딱 맞는 것 같네요. 지금은 세월이 흘러 조금 덜 하지만 공부쪽으로는 좀 극성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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