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연대대학 외국인기숙사에서 새롭게 시작한 중국생활(12) 중국첫방문기

2000년 겨울, 춘절기간 란쿤의 고향에서 지내다 혼자 중국연대대학으로 돌아와 집을 연대대학교 내의 외국인기숙사로 옮겼습니다. 

한국에서 화교지인이 소개해 준 집은 난방, 온수도 없고, 무엇보다 아파트가 아직 '건축중'인 그런 집이어서 생활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또 나에게 중국어를 가르쳐 줄 학생들이 많은 연대대학교로 숙소를 옮기는 것이 더 중국어 배우는데 유리하겠더라구요. 화교지인의 집에서 연대대학까지는 1시간이 넘는 거리였습니다.
저 외국인기숙사 건물을 于维宏 [위웨이홍] 이라 불렀는데, 당시 중국어를 잘 못 하던 시절이라 쟤 발음이 그렇게 어려웠습니다. 
지금은 어떻게 변했는지 모르겠지만, 당시에는 정말 건물이 낡아서 추웠습니다. 
또, 온수도 저녁에 딱 2시간만 나와서 저녁 먹다가 온수 나오는 시간에 돌아가서 샤워하고 또 친구만나는 그런 생활도 했구요.
밤10시인가 10시30분인가 통금이 있어서... 무려 외국인기숙사 임에도 통금시간이 있었습니다... 밖에서 친구들과 놀다가도 통금시간 전에 들어가야 했구요.  당시 1층 사감직원이 있었는데... 사감직원이 이뻤어요. 마음씨도 착하고. 그런데 중국 살아보신 분들 많이들 느꼈을테지만, 특유의 '일체 융통성이 없는 규칙대로 하는 일처리' 로 엄청 눈치보고 사정을 했습니다. 
위 사진은 2000년 1월이 아닌 아마 12월경에 찍은 사진인듯 합니다. 앞 줄 제 옆에 서 있는 여자분이 기숙사 사람이셨는데, 참 참하게 생기고 착하고 성격도 좋고 다 좋았는데... 너무 규정대로해서 모든 외국인들이 다 무서워 했을거에요. 심지어 뒤쪽 짙은 옷 3명은 계약직 영어강사임에도 다들 무서워 했습니다. 기숙사 앞에서 찍은 사진이네요.
마찬가지로 기숙사 앞에서 찍은 사진인데요. 아무튼 참 추웠습니다. 단층유리에 창틀사이로 밖이 훤히 보이는... 찬바람이 미친듯 들어와서 실내가 정말 추웠습니다. 당시 학생시절이라 돈이 없고, 단기로 있다가 돌아간다는 생각에 뭘 구입하더라도 가장 싼걸로만 구입했는데 작은 바람나오는 온풍기는 그 큰 방을 뎁히기에는 어림도 없었습니다. 

또, 대학교가 워낙 넓어서 자전거가 없으면 이동이 정말 불편하거든요. 가장가장 싼 중고중에서도 중고를 구입했더니만 항상 말썽이 생겨서 학교내 자전거수리점을 갔던 기억도 있습니다. 

2000년 1월 2월 두 달을 중국연대라는 지역에 있으면서 한달 정도는 화교지인집과 란쿤시골집 한달 정도는 연대대학기숙사에서 생활하며 오로지 중국어를 배우겠다는 생각으로 중국친구들에게서 미친사람처럼 중국어를 배웠습니다. 두 달 동안 저를 위해 중국어를 가르쳐 줬던 중국친구들 생각이 나네요.
그림은 오늘도 Fangju 팡지양이 수고해 주었습니다. 9월 신학기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지난주 고향부모님 댁을 내려갔다 왔다더군요.
제가 농담삼아 '부모님 만나서 울었어?' 라고 물으니 '그 정도는 아니다' 라고 하더군요.

사실 대만은 멀어도 4~5시간이면 거의 모든 지역을 다 갈 수 있을 정도로 국토가 작습니다. 그래서 고향을 떠나는 일이 "큰이별"이 아닙니다. 
 
중국은 고향가려면 2박3일 이상 걸리는 곳도 많고 당시는 연락도 잘 안 되는 시절이라 고향가서 부모 만나거나 다시 도시로 갈때 우는 학생들이 많습니다. 요즘 중국 살고 있는 분들 중에 '고향이 어딘데 2박 3일이나 걸려?' 라고 할 분도 계시는데요. 정말로 그 이상으로 걸리고, 이 때 연대대학에 남아 있던 학생들은 고향집이 너무 멀어 못 돌아간 학생들이었습니다.  

기숙사전경사진은 인터넷펌입니다. 

덧글

  • santalinus 2017/11/14 13:05 # 답글

    북경에서 어학연수 할 때, 친하게 지내던 친구 중 한 명 고향이 신장이었습니다. 기차 타고 다니면서 길에서 버리는 시간이 너무 많더군요.... 우는 심정이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 하늘라인 2017/11/14 14:59 #

    실제로 학생들 큰 도시로 떠나 보낼때 많이 운다는 이야기를 중국친구들에게서 들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있을땐 마을에 전화기가 집집마다 없어서 동네이장집에 가서 전화 받고 그러더라구요.

    란쿤고향동네에도 전화기가 마을에 몇 대 밖에 없어 연락도 쉽지 않았던 시절이죠. 그러니 한 번 떠나면 소식 듣기가 어려운 시절이라 눈물이 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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