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군대생활에서 가장 아찔했던 순간 하늘라인의 하늘공간

며칠전 광화문 지나다 위의 사진을 찍어 보았다. 시위진압의경이다. 내가 아주아주 오래전 의경을 나왔다.

논산훈련소-충주경찰학교의 약 2개월 넘는 훈련기간을 마치고, 자대배치를 받았는데... 지금도 그런지 모르겠지만, 완전 무슨 구타와 가혹행위가 난무하는 그냥 그런 곳이었다.  의경조직의 저런 문화는 크게 두가지라고 생각을 한다.

1. 소대장(경사, 경위급), 분대장(경감급) 이런 사람들이 자신의 중대에 크게 애정이 없거나, 그냥 세세하게 관리하기 싫어서 그냥 의경들 너네끼리 알아서 관리하고 감독해라 이런 식이었던 것 같다. 그러다보니 그냥 구타하고 가혹행위하고 이런 것들이 몸에 배어서.. 특히 90년대초 였으니.

2. (긍정적으로 보면)늘 시위진압이라는 실전을 해야 하니까 정말 정신줄 놓고 있다가는 부대전체가 시위대에 깨져버리는 상황도 발생하고 전체가 일사분란하게 움직이지 않으면 저런 시위현장에서 그야말로 당나라부대가 되어 시위대에 엄청 깨져버리는 일이 생길 수 있기 때문에 군기잡기용으로 그럴 수도 있다.

암튼...
나는 부산의 모중대였는데, 서울에 대규모 집회가 있어서 지방의 부대들이 차출되어 서울까지 대거 올라왔다. 기억으로는 거의 12시간가량 걸려서 왔던 것 같다. 전체 중대의 가장 아래 신병의 신분으로... 저 버스에서 올라오는 내내 계속 허리세우고 앉아, 군가부르고 올라오다보니 정말정말 힘들었다.

그렇게 처음 완전진압복 입고 방패들고 서 있었던 곳이 저 근처 롯데백화점 대로변이다. 그 당시 저 멀리서 보이는 대학생시위대의 깃발과 2m 넘는 쇠파이프는 정말 공포 그자체였다. 이제 훈련소퇴소하여 자대배치 받았던 때라 시위진압훈련도 제대로 안 받고 서 있었던 때라 정말 무서웠다. (중간 고참들이 정신차리라는 뜻에서 겁을 많이 주기도 했다)

내가 의경복무 할 때는 "화염병" 무써운 그 "화염병"이 날아다니던 시절이라...

당시 말년 고참들하고 목욕탕을 갈 일이 있었는데, 진압복이 커버하지 않는 목, 손목 이런데 화상흉터가 있는 걸 보고 군대와서 참 안 됐다 라는 생각을 하곤 했고, 앞으로 나의 미래구나 라는 생각도 했었다. 중요한 건 이게 아니다.

서울올라온 둘째날인가 세째날... 연세대 후문 어느 숲속에서 학교내로 추가진입하는 시위대를 막으라는 임무를 띄고 완전진압복에 수류탄처럼 생긴 최루탄(이젠 이름도 모르겠다)을 2개씩 지급 받아 가지고 있었는데, 그걸 진압복에 대충 꽂아 넣고 있다가 이동하는 도중에 떨어 뜨린 것이다. 그것도 전 중대에서 신병이.  나는 떨어뜨린 걸 모르고 걸어가고 있었는데, 타중대 의경이 그걸 보고 나에게 '주워 준 것이다' 천.만.다.행.으로 우리 중대 고참들 아무도 그 장면을 보지 못 했다.

만약 그걸 떨어뜨리고 잃어 버렸거나, 다른 중대 사람이 주워 주는걸 우리 중대고참이 봤더라면...

아마도 나는 지금 구타폭행의 후유증으로 신체 어디 한 곳이 또는 서너곳이 정상이 아니었을거라고 생각한다.

근거는? 그것보다 더 사소한 잘못으로 워커발로 가슴, 배, 머리 등을 개 맞듯이 맞는 일들이 너무나 일상이었기 때문에. 기억하기로는 그 중대를 떠나는 날까지 단 하루도 아침에 저녁에 구타, 가혹행위가 없었던 날이 없었던 것 같다.

그런데 주요장비인 최루탄을 분실?  아마 전 최고참 부터 내 바로 위의 고참에게까지 내려가며 맞았을 것 같다.

내가 생각해도 정말 아찔한 순간이었다.
최근 진짜사나이에서 밥을 먹고 자신의 식판을 자신이 씻는 걸 보고 민주군대 라고 생각을 했었다.

우리는 중대원이 먹은 쇠로된 식판을 한 곳에 담궈 놓았다가 가장 아래 사람 4명이 수세미를 들고 씻었다. 그런데 매일 아침 이게 너무 싫었다. 왜냐면 그 많은 식판을 닦을 동안에 손이 잠시라도 멈추면 상병급 고참의 발이 날아오거나 식판으로 머리를 정말 세게 내리쳤다. 그래서 그 당시 식판이 제대로 된 게 거의 없었다. 그 스테인레스 식판의 밥 담는 부분으로 머리를 내리친다고 생각을 하면... 순간 정신이 나갈 정도로 아프다. 당시 내 아래 기수 한 명은 웬 미친 고참이 모서리로 머리를 내리 찍어 찢어지고 피가 났는데, 그 고참이 사실을 덮으려고 빨간약만 바르고 말하면 죽는다고 해서 넘어 간 적도 있다.

암튼 며칠전 오랜만에 집회 모습을 보고 의경들을 보니 이전 의경생활 할 때의 기억이 난다.

저 서울집회 이후 울산현대조선소인가? 거기서 장기집회가 있어서 보름동안 학교교실에서 먹고자고 하면서 시위를 막고는 드디어 시위진압훈련을 당당히 마쳤다. 시위진압훈련 동안에는 구타가혹행위가 더 심해진다.

기상
1. 영도대교 아래 컨테이너 야적장 으쓱한 곳으로 구보. 거기서 밤새 잘 못한 사람들 구타.
2. 구두, 워커 닦으러 건물 옥상에 올라가서 둘러 앉아 신발 닦으면서 구타. (정말 공포의 시간. 쪼그려 앉아 있는데 날아오는 구둣발)
3. 밥 먹고 식당의 창고 구석에 둘러 앉아 담배피면서 가혹행위
4. 아까 말한 식판 닦을 때. 이 때는 안 맞을래야 안 맞을 수가 없다. 그렇게 빠른 속도로 손을 움직여 그 많은 식판을 닦아야 하는데, 식판에 밥 찌꺼기 조금이라도 나오면 (안 나올 수가 없음) 고참의 식판스매싱 내지는 발길질... 이 때는 정말 많이 맞음
5. 근무시간에는 버스 뒤 으슥한 곳에서 갈굼, 내지는 가혹행위. 특히 무전기 안테나로 근무시간동안 얼굴찌르는 가혹행위. 어떨 땐 구타보다 은근히 지속되는 가혹행위가 더 짜증.

가장 기억 나는 구타는 약 두시간 동안 경찰서 옥상에서 자행된 구타. 소대원 전체가 둘러 앉아 있는 가운데, 내 몇 기수 위의 고참은 그야말로 두시간여 병장급 고참에게 전체가 보는 앞에서 맞음. 그 병장 대학교 미식축구선수. 발로 가슴차기를 시작으로 전신 구타.

내가 보직변경을 해서 경찰청으로 발령받기 전 까지 나의 의경 부대생활의 기억은 그냥 구타-가혹행위-갈굼-구타-가혹행위-갈굼 이었다. 훈련을 하다 얼차례를 받는 건 당연한 건데, 그 외적으로 내무반생활하면서 구타-가혹행위-갈굼 은 의경/전경 부대의 큰 문제였다. 20여년전... 일이라 이제 처음으로 적어 본다.  지금은 저렇지 않을거란 기대를 하면서...

요약.
1. 당시 경찰직원들이 의경관리에 별로 관심 없었고, 시위가 많았던 탓에 저 정도 구타는 군기확립을 위해 용인하는 사회분위기여서 구타 가혹행위가 많았던 것 같다.

2. 신병때 최류탄 그거 분실했으면 내 신체의 어느 한 곳은 (경험상 봤을 때) 불구가 되어 있을 확율이 높았다. 끝.

덧.
나는 자대생활 조금 하고 시위진압훈련 마치고 나니 고참들이 조금 인정을 해주기 시작한 시점에 행정병으로 차출되어 부대생활 편하게 하나 싶었는데, 차출 일주일? 정도만에 다시 경찰청 으로 발령 받아 그 때 부터는 '후리' 하게 군생활을 했다. 경찰청장과 2년 가까이를 함께 지내는 일을 해서 육체노동에서 정신노동으로 전환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