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자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지 않는 아버지 (10) 외국계기업 태국주재원

저의 아버지와 이번에 여행을 다니면서 또 한번 느낀것이지만, 나이가 드니까 자신만의 고집이 있어서 다른 사람의 조언을 잘 안 듣더군요. 저의 아버지도 전형적인 본인 고집으로 평생을 살았던 사람이라 가족들과 마찰이 없진 않았죠. 그게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어느 정도 자식의 말도 듣고, 이제는 자식에게도 양보도 좀 하고 해야 하는데, 이상하게 나이가 많아지면 자신만의 아집이 더 강해지는 경향도 있습니다. 

나이가 들면, 내 생각이 다 맞지 않았구나, 라는걸 깨달을 만도 한데, 그게 잘 안 되는 것 같았습니다. 
웅장한 금빛탑이 있는 절이었습니다. 언덕 위에 있어서 그 웅장함을 더 해주는 느낌이었는데요.

아래쪽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이 곳까지 조금 걸어올라 왔습니다. 이번 여행을 하면서 항상 조금 멀리 걸어야하는 코스가 있으면 아버지와 아내에게 이야기를 합니다. 

"긴팔 자켓과 물병 하나 꼭 챙기세요"

그러면 꼭 아버지는 한마디 합니다. "뭐 춥지도 않은데, 뭐하러 긴팔을 챙기노?"
그렇게 이야기를 할 만도 한 것이 주차장에서의 하늘은 저랬으니까요. 살짝 덥기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여행내내 비가 자주 내렸었고, 제가 태국에 오래 있어보니까 비가 갑자기 내리는 경우도 많았으며, 실내에 들어가면 에어컨으로 온도가 상당히 춥습니다. 그래서 저는 가급적 가방에 긴팔 바람막이나 긴팔 셔츠를 하나씩 챙깁니다. 실내는 정말 춥습니다. 

홍콩가면 사람들이 긴팔 가디건을 입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그 사람들은 외부온도가 추워서가 아니라 실내가 너무 추워서이거든요.
그리고 저는 야외활동을 하게 되면 항상 물을 휴대합니다. 어떻게 될지 모르거든요.

저는 중국에서 생활을 하면서 사람이 어떤 예상치 못 한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경험을 많이 해서 늘 물 하나 정도는 휴대를 했습니다. 버스가 산 중턱에서 고장나서 장시간 멈추는 경우도 있고, 작은 슈퍼 하나라도 있겠지 라고 생각했던 시골지역에 들어갔다가 슈퍼 못 찾아 갈증에 고생한 적도 있고 해서 늘 미리 준비를 하는 습관이 있습니다. 

또 제가 물을 좀 자주 많이 마시는 경향도 있습니다. 어쨌든 물 하나 정도 챙겨서 나가라고 해도 꼭 토를 달고 안가지고 가려 하더군요.
절은 전체적으로 금빛으로 웅장하더군요. 올라와서 볼 만 했습니다. 
저는 태국에 있으면서 이런 절에 많이 와 봐서 아주 특별하다는 느낌은 없었는데, 아버지와 아내는 또 나름 이런 느낌의 절을 자주 접해보지 못 해서인지 흥미로워 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절을 다 둘러보고 내려가려는 즈음에...
이 풍경을 한 번 감상후 내려가려고 하는데...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하더군요.

위의 두 사진의 시간정보를 보니 딱 1분 차이네요. 1분 상간에 비가 내리기 시작해서 어쩔 수 없이 건물 아래에서 조금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만약 건물을 빠져 나가 내려가는 길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면 어쩔 수 없이 비를 맞고서라도 주차장까지 갔을텐데, 처마아래에 있으니 그냥 비 그치고 가자 라는 분위기가 형성이 되었습니다. 
비가 내리기 시작하니까 배낭여행객들은 비옷을 입기 시작하더군요. 우리는 차량으로 이동을 해서 소지품은 차에 두고 내렸죠. 그런데 저는 바람막이 긴팔은 챙겨왔는데, 아버지와 아내는 그냥 입고 있던 반팔로 왔더군요.
비가 꽤 오랜시간 그치지 않더군요. 그리고 비가 너무나 많이 내리니 어설프게 주차장으로 가기도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여기에 고립이 되어 한참을 기다렸습니다. 
비옷이 있는 사람들은 저렇게 이동을 했는데, 저희는 계속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아내가 추워 하는 것 같더군요. 비록 더운 날씨지만 이렇게 비가 내리면 체온이 많이 떨어집니다. 그래서 등산할 때 날씨가 좀 더워보여도 체온을 보호할 수 있는 비상용 옷등을 휴대하라고 하는 이유가 산의 기온은 변화의 폭이 크기 때문이죠.
그래서 (저도 좀 추웠지만) 바람막이를 아내에게 주었습니다. 

그런데 기다리다보니 아버지가 계속 비를 맞더라도 차로 가자고 독촉을 하더군요. 그런데 이게 비가 너무 많이 내리니 주차장까지 가다가는 옷이 완전히 젖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아버지에게 조금만 더 기다려 보자고 했거든요.
나중에 알고 보니, 아버지가 엄청 추웠었다고 하시더군요. 이 사건 이후에 아버지를 관찰해보니 추위를 많이 타시더군요. 헬스를 많이 해서 체지방이 낮아서인지, 어째서인지 같은 온도임에도 저희보다 추위를 많이 타는 듯 했습니다. 저도 더위보다는 추위를 타는 편임에도 말이죠.

어쨌든, 제가 차에서 내려 이런 곳을 가게되면 항상 긴팔을 하나 챙기라고 이야기를 하는데도, 꼭 말을 잘 안들으시더군요.

저는 이런 여행관련해서는 경험과 경력이 좀 있거든요. 

이전에 아버지와 태국에 왔을때, 자동차로 이동을 했던 적이 있는데요. 아버지가 집에서 아메리카노 커피를 컵 한 가득 타서 마시려고 하더군요. 그래서 제가 "지금 차로 장거리 이동을 해야 하는데, 화장실 찾기가 좀 어려울 수도 있으니 커피 조금만 마시세요" 라는 말을 했음에도 머그컵 한 잔을 굳이 원샷을 하시더군요. 뭐 결과는 도중에 화장실 가고 싶다고...

저때도 느꼈었죠. 자식말 더럽게 안 들으시는 구나...
하여튼 저의 아버지도 이전에 비하면 고집이 많이 약해지긴 했지만, 여전히 자식말 잘 안 들으시더군요.

저는 이런 경험을 위한 인생수업료를 정말 많이 냈거든요. 30대초반 어린나이부터 뭘 해보겠다고 도전을 많이 하다보니 시행착오에 대한 인생수업료, 기회비용을 날린 것에 대한 인생수업료 등등 적지 않은 돈을 많이 지불했습니다. 경험을 위해서...

저는 또 성향이 무언가를 도전하고 시도해 보는데 겁이 없는 편이라 이것저것 혼자서 많은 걸 해 보았었죠. 거기서 축적된 경험과 노하우가 나름 있거든요. 

더운 날씨에 긴팔 챙기라고 하는 건, 다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것들이죠. 
여하튼 저 때 아버지가 저보고 '비를 맞더라도 좀 내려가자' 라고 했을때 제가 눈치를 채지 못 하고 '태국은 비가 확 내리다가도 금방 그칩니다' 라고 하면서 기다렸는데, 엄청 추워서 체온이 확 떨어졌었다고 하시더군요. (지금 생각하면 정말 미안합니다) 저의 바람막이도 아내에게 준 상태였고, 무엇보다도 아버지가 추위에 떨고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습니다. 
차를 타니까 히터 좀 틀어 달라고 하시더군요.  태국차량은 히터기능이 없는 차들도 많구요. 제 차는 히터기능이 있는 차량이라 처음으로 저 날 차량히터를 가동을 했었습니다. 

나이가 많으면 또 나이가 많은대로, 나이가 어리면 또 나이가 어린대로 경험/경력이 있는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자기 고집이 있어 꼭 스스로 시행착오를 해 봐야 아는 경우가 있죠. 똥인지 된장인지 찍어 먹어 보아야 아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제가 그랬으니까요. 저도 젊었을때는 내 생각과 내 주장대로 인생을 많이 살다보니 '시행착오를 통한 인생수업료' 정말 많이 냈습니다. 다행인건 그나마 그런 경험이 많이 쌓이다보니 요즘에는 저보다 나이 많은 어르신들과 대화를 하면서 그분들의 조언을 많이 듣는 편입니다. 과거를 통해 배워 나가는 거죠.
저의 아버지 이신대요. 그냥 너무 추워서 그러니까 비가 와도 내려가자고 했으면 저도 무슨 방법을 찾아서 내려가려고 했을텐데, 아버지도 자식에게 감정표현 잘 안 하시고, 강한 모습만 보이려고 하다보니까 차마 춥다는 말을 못 하셨던 것 같습니다. 또 저의 바람막이를 아내가 입고 있으니 혹시 춥다고 하면 아내가 입고 있던 바람막이를 벗어 주려 할까봐 일부러 말을 하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평소 아버지 성향을 봤을때...

이렇게 여행을 함께 하다보니 평소에는 잘 몰랐던 사람의 성격과 모습도 알게 되는 거죠. 

혹시 이 글만 읽으신 분들을 위해 도움을 드리면... 저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다 집을 나와 지내기 시작했으며, 그 뒤로도 대체로 분가를 해서 지낸 시간들이 많았으며, 부산에 살면서도 부모랑 함께 살기 싫어 자취를 했던 시절도 있었고, 부산을 떠난 이후로는 제대로 함께 부모님과 지낸 적도 없으며, 해외생활을 핑계로 명절에도 집에 잘 가지 않았었고, 30대 중후반에는 부모와 대판 싸우고 나서 거의 5년동안 전화 한통 없이 연락도 하지 않아 대략 4~5년째는 아버지가 술마시고 제 휴대폰번호를 지워 버렸다는 이야기도 있더군요.  그렇게 살다보니 부모가 어떤 삶을 살고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잘 몰랐습니다. 솔직히 별로 관심도 없었습니다. 

혼자 자수성가를 해 보겠다는 생각으로 인생을 살다보니 타인을 돌아볼 여유가 없더군요. 사업 1차 실패 후에는 하루하루가 전쟁을 하는 기분으로 살았습니다. 물론 사업을 할 때도 하루하루가 전쟁이었구요. 그런 와중에 저의 부모님의 고집스런 성격이 또 저와 잘 맞지 않아 더 연락을 하지 않고 살아 왔는데, 이제는 나이가 좀 많이 들었음에도 '노인네들의 고집은 변하지 않는군요'

이제는 제가 부모성격에 좀 맞추면서 살아야겠습니다.... 라고 또 글을 썼지만... 이번 여행때 아버지와 몇 번 싸웠는데, 이제는 제가 소리를 지르니까 아버지가 아무말 못 하는걸 보면서 좀 안 쓰럽기도 하더군요. 제가 20대때는 아버지가 소리를 지르는 역할이었고 제가 아무말 못 하고 야단맞는 역이었는데요. 

이젠 아버지가 소리를 질러도 무섭지가 않고 제가 소리를 질러 버리니 아버지가 아무말 못 할 만큼 다들 나이가 들었습니다. 

인생이 다 이런 것 같습니다. 

태국 몽족마을 둘러보기 (9) 외국계기업 태국주재원

(8)편에서 소개한 카페가 있는 몽족마을을 천천히 둘러보았습니다. 

저의 여행성향은 이런 시골마을, 현지인들 주거지 등을 방문하고 둘러보고 그 사람들과 교류해 보는 것인데, 어떤 사람들은 또 이런 곳에는 크게 흥미가 없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번 여행에도 이런 시골마을을 몇 군데 방문했는데, 확실히 저의 아내는 큰 관심이 없는 것 같았고 저의 아버지는 그냥 빨리빨리 지나가시더군요.
차를 가지고 운전을 하면 조금 떨어진 곳에 주차를 하라고 합니다. (실제로 법적인 효력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현지인들이 주차를 하라고 합니다) 거기서 주차를 하면 이곳 마을주차장까지는 현지인들이 운행하는 트럭을 타고 들어와야 합니다. 이런 식으로 운영하는 곳이 태국에 많아서 한켠 이해는 됩니다. 
주차장입구에서 만난 저 강아지는 계속 우리와 함께 발걸음을 맞추면서 동네위쪽까지 걸어오더군요. 우리가 뭘 시키거나 말을 건 것도 아닌데, 우리따라 함께 여기까지 걸어 올라왔습니다. 
마을은 전체적으로 오래된 느낌이고 건물들도 대부분 많이 낡은 상태였습니다. 

아무래도 산촌은 평야가 있는 농촌지역에 비해 수입원을 낼 수 있는 '토지' 가 적어서 빈곤이 더 심할겁니다. 그래서 보니까 커피도 재배를 하고 버섯이나 약초, 벌집등도 채집을 하지만 버섯, 약초, 벌집 이런 것들은 아무래도 고정수입을 내기가 어렵잖아요.
산촌마을은 아무래도 물이 부족할 수 밖에 없으니 곳곳에 위에 보이는 대형수조가 보였구요.

태국 농촌마을은 길들이 넓은데, 산촌마을은 또 길도 좁을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런 식으로 계단식으로 주거공간을 확보하고 있거든요.
지붕도 대부분 저런 철판입니다. 그런데 저런 철판지붕의 단점은 당연히 단열이 잘 안 된다는 부분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비가 내리면 실내전체에 소음이 엄청납니다. 
대나무로 벽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많은 집들이 목재로 지어져 있는 모습입니다. 
동네아이들이 축구공으로 축구를 하는 모습입니다. 산골마을이라 넓은 공터가 많지 않아 보였습니다. 
태국시골마을을 가보면 닭들을 이렇게 풀어 놓고 키우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어느 시골을 가나 마을 전체에 닭들은 자유롭게 풀어 놓고 키우더군요.
이 병아리는 어미따라 올라가지 못 해서 한참을 아래에서 도약을 했었습니다. 

저도 어릴때 시골할머니 집에서 생활한 시간이 많았는데요. 할머니께서 닭이 달걀을 낳으면 그걸 바로 집어서 따뜻할 때 구멍을 조금 내어 저보고 생달걀을 마시라고 해서 자주 마셨던 기억이 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껍집에 세균도 많을 거고 생달걀이 그렇게 위생적이지도 않았을 것 같은데, 늘 그렇게 깨서 입대고 마신걸 보면, 지금 기준으로보면 대단합니다. 
저렇게 가두어 놓고 키우는 곳도 있었는데, 아무래도 공간이 부족하다보니 공중에 집을 지어서 닭장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제가 많은 지역들을 돌아다니면서 보면, 확실히 사람들은 환경에 적응하고 주어진 환경을 활용하는 능력은 대단합니다. 

이런 곳을 여행하면 대부분 사람들은 시간이 많이 없으니 그냥 휙 전체를 둘러보고 갑니다. 저도 이번여행에서 아버지와 아내랑 함께 여행을 하다보니 한 곳에서 시간을 많이 보내지 못 했었는데요. 무언가를 자세히 보면 또 다른 재미가 있습니다. 
당연히 현지인이 있어서 함께 설명도 듣고 하면 더 도움이 되겠지만 그렇지 못 할 경우에는 자세히 관찰을 해 보면 여행의 재미가 배가 됩니다. 
감성이나 인문학적소양이 필요한 이유기도 하죠. 살다보면 그런 감성적인 부분이 없거나 약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도 한 때 먹고 사느라 주변의 아름다운 것들을 놓치고 돈만 보고 살았던 적이 있어서 지금은 그렇게 살지 않으려 노력을 많이 합니다. 
제가 어릴때 방학만 되면 시골에 보내져서 거기서 할아버지/할머니와 생활을 했었는데요. 그 때는 이유를 몰랐지만 그 당시 부모님이 너무 가난해서 저를 돌볼 여유가 없어서 항상 방학이면 저를 시골에 보냈습니다.
작은 시골이지만 시골동네친구들과 할 것들이 많았습니다. 여름에는 대체로 강에가서 수영하고 물고기, 고동을 잡고, 겨울에는 야외에서 막 뛰어 놓았습니다. 그 당시에는 눈도 많이 와서 눈싸움도 자주 했었고, 늘 부엌이나 소여물 끓이는 곳에 불을 피우니까 거기서 불피우며 몸도 녹이고 그랬거든요. 지금 생각해보면 참 작은 시골마을인데, 할 것들이 무궁무진했었네요.

대만에서 여행가이드를 해 드린 어느 중년 남자분이 있는데, 그 분은 참 안타깝더군요. 여행을 함께 하는 동안에도 오로지 술마실 생각과 돈 벌 이야기만 하시더군요. 어느 여행지를 가더라도 '이런걸 왜 보러 오냐고' 함께 간 여자분에게 이야기를 하는데... 그런 삶도 삶이니 뭐라고 할 부분은 아니지만 어린 친구들이 감성적인 부분을 느낄 기회가 없는 것은 안타깝기는 합니다. 
감성적인 부분이나 인문학적 소양이 떨어지는 사람들은 사람에 대한 공감능력이 떨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사회생활을 할 때 기계적관계, 수치적 결과, 법적인 허용여부 등등으로만 사람과의 관계를 맺어 가는 경우가 많은데, 사람이라는 것이 살다보면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 감성적인 영역이 있습니다. 확실히 살다보니까 공감능력이 떨어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연과학영역에서는 1+1 = 2 라고 할 수 있지만 사회과학영역에서는 1+1 = 이 다양하게 나올 수도 있는 것이거든요. 

제가 다음에 이런 공감능력이나 어른으로서 철이 든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이런 시골지역의 사례를 들어 글을 써 보겠습니다.
마을입구에는 주로 상점들이 있구요. 아이들이 상점에서 무언가를 사고 있는 모습입니다. 

차이컬쳐를 오래전부터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저는 늘 인생의 목표가 이런 교육의 기회가 없는 지역의 아이들에게 좀 더 양질의 교육을 제공하고, 대형스크린을 차로 싣고 가서 밤에 영화를 볼 수 있게 해 주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양질의 교육기회를 줘야, 가난을 끓기 쉽구요. 대형스크린으로 영화를 보게 해 줌으로서 감성적인 영역을 자극시켜줄 수 있거든요.

언제나 이런 일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이번에 아버지랑 함께 다녔던 장소들을 다음에는 현지인과 함께 와서 현지인들과 대화도 해 보고 현지인들 집도 한 번 들어가 보고 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2000년도 처음 중국운남성 오지마을을 그렇게 여행을 해 보고 '겸손'해져야겠다는 걸 배웠거든요.

운남성 너무 좋아서 지금까지 3번 방문을 했었는데요. 이번에 태국산골마을들도 다음에 기회가 되면 이런 식의 여행이 아니라 현지인들과 좀 더 이야기를 나눠 볼 수 있는 그런 여행을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태국 소수민족마을을 내려다보며 마셔본 태국커피한잔 (8) 외국계기업 태국주재원

태국 북부지역은 커피로 유명합니다. 이 곳 지역은 커피가 하나의 주된 수입원이고, 태국 전지역에 이곳에서 생산된 커피원두가 판매되고 있습니다. 제가 태국을 오기전에는 태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지식이 별로 없어서 태국이 커피산지 인줄도 몰랐습니다. 문화에 대한 지식이 중화권국가에 다소 편중되어 있었습니다. 보통 태국하면 열대과일, 휴양 정도로 생각을 하지 커피원두는 잘 연상이 안 되잖아요.

그런데 이번에 북부여행을 하면서 몇 군데 커피산지도 방문을 했고, 산악지역의 풍경좋은 곳에서 커피도 마셔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몽족마을의 뒷편에 전망좋은 카페가 있다고 해서 와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 마을에서 이런 전망을 보며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카페가 여기 밖에 없더군요. 경쟁가게가 없으니 여기서 커피를 마시겠다고 하면 이 카페가 유일한 옵션입니다. 

한국의 카페, 식당 같은 자영업시장을 보면, 문제는 너무 많다는 거죠. 커피장사가 문제가 아니라, 카페가 주변에 너무 많은 것이 문제입니다. 여기처럼 카페가 하나밖에 없으면 크게 문제가 될 것이 없는데, 한국에서는 좁은 지역에 카페가 너무나도 많습니다. 특히 제가 사는 동네는 4거리 4개의 블럭에서 3개의 블럭에 스타벅스가 있습니다. 물론 스타벅스 주변으로는 다른 브랜드와 개인카페도 많구요. 
마을의 가장 뒷쪽 윗쪽의 언덕에 자리를 잡고 있어서 조금 걸어올라와야 합니다. 이런 커피원두산지에 와서 커피한잔 할만 하더군요.
산으로 둘러쌓인 작은 마을입니다. 도심에서 차로도 꽤 운전을 해와야 하는 거리인데요. 이전에 차가 없던 시절에는 이런 산골마을에서 고립되어 살면 이웃마을과 교류하기가 쉽지 않았겠구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의 외가쪽이 읍에서 20~30분 정도 차를 타고 가서 거기서 도보로 산 하나를 넘어야 하는 곳이었거든요. 전형적인 계단식 논/밭이 있는 산골마을이었는데요. 저의 외할아버지집은 실제로 머슴도 있었고, '첩' 이 허용되는 시절이었습니다. 제가 아주 어릴때 외할아버지집을 갈때면 좁은 산길을 넘어야 했는데, 밤에 그 산길을 넘어갈때면 너무나도 무서웠고, 한번은 미친듯이 눈보라가 내리는 밤에 그 산길을 넘어간 적이 있습니다. 

여기를 와 보니 외할아버지마을의 고립정도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더 깊은 곳에 위치를 하고 있습니다. 차량으로만 한참을 이동을 했으니까요. 함께 갔던 저의 아버지도 "한국 산촌은 이렇게 깊은 곳이 없다" 라고 하실 정도였으니까요.
이런 카페는 전망/위치가 많은 부분을 차지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커피를 거의 매일 그것도 블랙으로만 마시면서도 커피의 맛 구분을 하라고 하면 저는 못 하겠거든요. 가끔 어떤 카페를 가면 두세개의 커피를 내어 주면서 산미가 어떠니 라고 설명을 하고 원두냄새가 다르다고 하긴하는데... 모르겠습니다. 저만 그런거에 둔감한건지... 다른 사람들은 다 알고서 고개를 끄덕이는건지... 

제가 커피를 받아서 한모금 입에 대고 그대로 버린적은 중국 KFC 커피 외에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중국 KFC 도 매장이나 시간대별로 커피 맛이 다르긴 합니다)
이렇게 멀리 어렵게 차로 이동을 해서 이런 풍경을 보며 커피를 마시면, 커피맛이야 어떻든지 상관없습니다. 완전히 행주 우려낸 맛만 아니면요(중국의 모 KFC 커피처럼)

저는 20대까지는 운동을 한다고 해서 술/담배/커피 는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술은 어쩔 수 없어 술자리 끌려가면 술한자 가지고 들었다 놓았다 하는 정도이고, 심지어는 20대때 카페에서 1년 넘게 알바를 하면서도 커피를 마시지 않았습니다. 카페사장님이 커피는 마시고 싶은 만큼 마셔라 라고 했음에도 커피를 마시면 몸관리에 이상이 있을거라는 믿음이 있어서 커피를 전혀 안 마셨죠. 그러다 사회생활 하면서 이제는 커피는 못 끊겠더군요. 숙면을 위해서 가급적 디카페인으로만 마시고는 있습니다. 
제가 약간 도시적인 이미지가 있는건지, 제가 시골이나 좀 허름한 분위기의 식당 카페를 가면 '너 여기 괜찮아?' 라고 물어보는 사람들이 있는데... 제가 차이컬쳐에서 수많은 여행글들을 올렸고, 또 제가 정말 좋아하는 여행이 중국오지쪽 여행이듯이 저는 이런 느낌의 카페도 아주 좋아합니다. 저는 일부러 이런 지역을 찾아 다니니까요. 

저를 조금 아는 분들은 제가 편식이나 음식을 가리지 않는다는건 또 다들 아시더군요. 저는 음식도 잠자리도 심지어는 화장실 등 이런저런 것들을 크게 가리는 편이 아닙니다. 어디 여행가서 이것 못 먹어, 저것 못 먹어 하는 사람을 보면 오히려 불편하다 느낄 정도이니까요.
아버지도 워낙 말 수가 적고, 감정표현이 없으셔서 직접적으로 이야기를 들을 수 없었지만 분위기를 보니 이런 곳에 와서 풍경을 바라보며 커피를 마시니 기분은 좋으신 것 같더군요. 이번 여행때 보니까 기분이 좋으면 옛날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하는 경향이 있더군요.
이 글을 쓰는 오늘아침... 40전후의 젊은 지인의 동생이 당뇨병으로 어제밤 사망을 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저의 아버지가 50전후에 당뇨병으로 심하게 고생해서 (그 때 잠시 술/담배를 끊더군요) 늘 당뇨병에 대한 걱정을 하고 살아 왔었거든요.  당뇨병은 유전이라고 해서 저도 늘 비만이 되지 않으려고 유지를 하는 편이구요.

그러던 와중에 오늘 오전에 지인의 동생이 당뇨병으로 어제밤에 사망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아버지 생각이 먼저 났습니다. 이번 여행때도 아버지가 "이제 내가 살면 얼마나 살겠냐?" 라는 말을 몇 번 하셨고, 또 지금 살아계시는 할머니께서 치매로 오랜세월 식물인간처럼 살고 계셔서인지 또 치매에 대한 두려움도 좀 있으신 것 같더군요. 하루아침 자식들이나 가족들을 못 알아볼 것에 대한 두려움/걱정이 있으신 듯 했습니다. 아버지가 적어 놓은 글들을 좀 읽어 보니까 '치매' 관련 이야기가 많더군요.
저는 오랜세월 가족들과 딱히 교류를 하지 않다가 최근에 좀 이야기를 나눠 보니 가족들 모두 분위기가 "건강하게 즐겁게 사는 것이 최고인지. 살면 얼마나 산다고 맨날 스트레스 받아가며 억지로 사냐?" 더군요. 깜짝 놀랐습니다. 저의집 분위기가 이전에는 대체로 '악착같이 사는것' 이었거든요.

얼마전에 TV를 여동생과 함께 보는데, TV에서 어떤 사람이 돈 아끼고, 소비를 최소화 하면서 아침부터 밤까지 일하며 돈만 버는 걸 미화하는 모습을 보자, "저렇게 돈 모으다가 죽으면 뭐하는데?" 라고 하는걸 들으면서 순간 제 귀를 의심했었습니다. 원래 우리 집안이 그 TV속 사람처럼 살았던 분위기였거든요.

다들 나이가 들고 경제적으로 안정이 되어서인지 인생관이 많이 바뀐 것 같더군요. 그런데 그게 바람직하죠. 나이가 어느 정도 들어서도 베풀지 못 하고 여유있지 못 한 삶을 살면 그것도 참 불행한 삶일 수 있습니다. 너무 작은 이익에 매몰이 되어서 살다 보면 더 많은 것을 잃을 수도 있구요.

그리고 건강이 중요합니다. 당뇨였다는 지인의 동생이 며칠전 중환자실에 입원했다는 소식은 들었는데, 설마 며칠만에 사망을 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습니다. 40대 전후라서 당뇨같은 걸로 사망을 할거라고 생각하기가 더 어렵잖아요. 그 동생분은 만나본 적은 없지만 친한 지인의 가족이라 아침부터 마음이 좋지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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