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살기 시작했을때, 이케아침대 혼자 조립한 이야기 하늘라인의 하늘공간

저는 주거지 이동이 많은 삶의 형태라 가구, 가전 등에 대한 욕심이 별로 없습니다. 유목민 같은 생활을 하고 있으니까요. 
한국에 들어와서 살기 시작했을때도, 단기로 살게될지 모른다는 불확실성 때문에 가구, 가전 등도 최소한으로 구입하고 가장 저가형으로만 구입을 했습니다. 한국들어 왔을때 이것저것 필요한 가구, 가전을 구입 했는데, 총가격이 제 지인이 구입한 침대하나 가격도 안 되는 걸 보고 뿌듯?하게 생각하기도 했었습니다. 


먼저...
저는 대만에 처음 살기 시작했을때, 이케아를 엄청 자주 갔었습니다. 처음 대만 도착해서는 변두리 정말 오래된 건물의 단칸방에서 살았거든요. 엘리베이터도 없는 꼭대기층까지 걸어 다니며 호텔프론트에서 일을 하면서 살던 시절이었습니다. 갑자기 대만으로 갔었고, 당시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던 상태라 당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으로 '최소비용' 으로 살았던 시절입니다. 

무튼 그렇게 대만이라는 나라에 적응을 해 가면서 민박을 하려고 계획하고 집도 알아보러 다니고, 집이 정해지자 채워넣을 가구도 보러 다녔죠. 그래서 당시 퇴근하거나 시간만 나면 이케아로 출근을 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제품종류 보고, 가격비교하고, 사이즈가 맞는지 또 보고...
저의 대만 첫번째 단칸방인데요. 방하나에 욕실하나 있는 구조입니다. 다행히 베란다가 있어 세탁기와 빨래를 널 수 있는 그런 작은 공간이었는데, 가구를 놓을 공간도 없어서 침대와 오른편에 보이는 수납장 하나 놓은 것이 전부입니다. 그러다보니 물건들을 수납할 공간이 없었죠. 뭐 물건 수납공간이 없는건 좋은데, 부엌이 없다 보니 저기 바닥에 전기로 하는 인버터 같은 것 놓고 도마도 바닥에 놓고 음식을 해 먹으며 살았습니다. 바닥에 쪼그려 앉아서 음식 만들어 먹으며 살다보니 많은 생각들이 들더군요.
직장다니면서 집을 계속 보러 다녔습니다. 좋은 집들은 많았지만, 제가 부담할 수 있는 예산범위내의 집들은 또 마음에 들지 않거나 민박을 하기에는 부적합하더군요. 예산을 따지다보니 집구하기가 더 힘들었습니다. 그러다 (몇 몇분들은 와 보신 적이 있는) 위의 사진속 집을 찾았습니다. 건물은 낡았고, 가구들도 다 낡았지만, 이케아의 힘을 빌어 내부를 바꿔보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집을 구하고 나서는 본격적으로 이케아로 출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가구사이즈, 색상, 가격도 고려를 해야하고 조명들도 다 바꾸고, 소품들도 이케아에서 거의 다 구입을 했습니다. 
최대한 발품을 많이 팔아서 조금이라도 더 나은 제품들을 고르기 위해서 시간만 나면 이케아로 갔었습니다. 

예산이 넉넉치 못하다보니 소비에 더 신중하게 되더군요.
의자들도 하나하나 앉아보고... 특히 민박손님들이 사용하기에 좋은지. 청소청결유지가 용이한지 등까지 고려하다보니 시간이 더 많이 걸리더군요.
이케아침대매트리스도 종류가 다양하더군요. 그런데 숙박을 했던 손님들 중에 가끔 침대매트리스가 불편했다 라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소수이긴 하지만... 이케아매트리스가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습니다. 가장 저가형 숙소인데, 비싼 매트리스를 구입할 수 없잖아요. 저도 이케아매트리스를 사용했었으니까요.

당시에는 이케아에서 가구를 엄청 구입했습니다.
차이컬쳐를 방문해주신 분들 중에서도 숙박을 해 본 경험이 있는 방일겁니다. 당시에는 가구들도 많고 해서 조립서비스를 신청했죠. 가구들이 꽤 많았음에도, 이케아지정 조립업체분 2분이서 아주 숙련된 솜씨로 조립을 하셨습니다. 침대, 책상, 옷장 등등... 조명도 이케아에서 구입해서 이케아에 설치서비스를 요청했었죠. 뭐 다 비용이 들어갑니다. 
그렇게 한국이케아에서도 가장 큰 사이즈의 침대를 구입했는데요. 저걸 제가 혼자서 조립할 엄두가 나지 않아 구입배송 신청을 할 때 조립서비스도 신청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물건이 도착했을때 배송기사가 조립서비스는 안 되었다고 하더군요. 다시 조립서비스를 하려니까 기간도 좀 더 걸리고해서 돈도 아껴볼 겸 제가 조립을 해 보기로 했습니다. 

다행히 전동드라이버가 있었거든요. (전동드라이버가 없으면 왠만하면 혼자조립을 추천하지 않습니다)

쉽지가 않더군요. 하다보니...
설명서에 왜 혼자하지말고 두명이서 하라고 하는지를 알겠더군요. 반대편에서 누군가가 잡아주어야 하는데, 나사를 조일때 반대편에서 잡아주는 사람이 없으니 쉽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2명이서 조립하면 훨씬 쉽고 빨랐을겁니다. 혼자서 하지마세요. 혼자서 조립하다보면 성격이 삐뚤어질 수 있습니다.
그래도 침대를 하나 조립하고 나니까 자신감은 확 생기더군요. 그래서 그 뒤에 이케아에서 옷장을 하나 구입했는데, 그것도 그냥 제가 조립을 했습니다. 옷장이 아무리 힘들어도 침대보다 더 힘들겠냐는 생각이 들더군요.
저처럼 이주를 많이 하시는 분들은 가구, 가전이 구비되어 있는 형태의 방을 구하는 것이 경제적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은 전세제도가 있어서 전세집에는 가구, 가전이 있는 경우가 드물죠. 외국은 거의 월세개념이고 방들 중에도 가구, 가전이 구비되어 있는 경우가 많고, 이번에 태국에서 구한 방도 가구, 가전이 있는 형태입니다. 

침대조립할 때는 별다른 상처가 없었는데, 옷장 조립할 때 문짝이 엄지발톱을 찍어서 그 검은색 멍이 딱 일년을 가더군요. 한국도착해서 생긴 발톱의 멍이 한국을 떠날때쯤 사라졌습니다. 

격리호텔에서 회사직원에게 받은 제로콜라 및 노트북 외국계기업 태국주재원

오늘 아침 방콕에는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최근에 비가 자주 내렸다고 하더군요. 이른 아침 비가 내리니 특유의 후덥지근함도 덜하고 내리는 빗소리에 창문도 열어 두게 되네요. 오늘이 격리 3일차 시작입니다. 

격리를 한다고 회사직원들이 이래저래 안부를 많이 물어 옵니다. 불편한 점은 없냐? 필요한 물품은 없냐?

마침 유심카드를 전달해주려고 오는 직원이 "뭐 필요한 것 없냐" 고 하길래
제로콜라 15캔만 사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호텔측에서 물을 제공해 주지만, 계속 물만 마시기에는 뭔가 힘듭니다. 한국에서도 제로콜라를 박스로 사 놓고 마셨거든요. 한국은 제로콜라 가격이 상대적으로 비싼편이지만 태국과 대만은 제로콜라가 쌉니다. 
임시로 사용할 유심카드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 앞으로 제가 사용할 노트북을 받았습니다. 
현재 사용하고 있는 노트북이 '그램17' 인데 17인치 화면을 보다가 14인치 화면을 보니 엄청 작아 보입니다. 화면크기뿐만 아니라 무게도 그램17 보다 더 무거운 느낌입니다. 

지난번 회사에서는 개인노트북을 사용했었는데, 이번에는 회사노트북 한 번 사용해 보기로 했습니다.

저는 대학생때부터 노트북만 사용해 왔습니다. 군대제대하고 처음 산 노트북이 IBM 대학생용 특판가격 행사제품 이었습니다. 당시에는 성능보다는 '노.트.북' 이 있는 것만으로도 좋은 시절이었으니까요. 그러다 노트북은 이동용이므로 무게가 중요하다고 생각되어서 소니바이오 시리즈를 계속 사용하다가 그램이 나오고 나서는 그램으로 바꾸었습니다. 

저는 노트북을 가지고 이동을 많이 하는 타입이라 노트북을 고를때 무게가 고려대상의 첫번째 요소입니다. 
노트북을 가져다 주면서 제로콜라를 또 한팩 더 보내 주었습니다. 하루에 한 캔만 마시기 아슬했는데, 조금 사치?를 부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격리를 하면서 딱히 불편함은 없습니다. 밥 세끼 꼬박꼬박 나오고 공간도 넓고... 라인으로 연락하는 호텔직원도 좀 친절한듯 합니다. 라인으로 대화를 하면 항상 다양한 이모티콘을 사용해서 표현을 해 줍니다. 굳이 하나 아쉬움을 억지로 꼽아 보자면...
건물 맞은편이 다른 건물로 막혀 있어서 풍경을 보기가 어렵습니다. 베란다에 나가서 건물사이로 풍경이 조금 보이긴 하지만... 창문을 열어 두었을때 건물로 막혀 있어서 조금 답답함이 느껴집니다. 거기에다가 새침입 방지용 그물까지 있어서 격리생활의 유일한 낙인 베란다에서 바깥풍경 바라보기가 안 된다는 것이 약간의 아쉬움입니다. 이 부분 빼고는 괜찮습니다.

한국은 자신의 집에서 격리를 할 수 있습니다. 이 부분은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가족들과 함께 같은 공간에서 격리를 하는 것이 무슨 격리냐 싶은데, 그만큼 정부에서 '추적'을 할 수 있다고 자신을 하는 거겠죠?

대만은 호텔격리가 기본원칙입니다. 제가 대만에 있을때 잠시 일했었던 호텔도 격리호텔로 변경해서 운영을 하고 있더군요. 함께 일했던 동료와 종종 연락하는데, 격리손님 외에는 일반손님은 거의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대만도 만약 단독으로 거주할 수 있는 주택공간이 있으면 거기서 격리는 허용을 해 줍니다. 욕실과 방이 완전히 분리가 되어 있는 공간이 있으면 자가격리도 허용을 해 주더군요. 대만은 법규를 어기면 집행이 엄격하고 처형정도가 한국보다는 높은 편입니다. 벌금도 한국보다 높은 편이구요. 한국은 인터넷상에서도 많이 언급이 되고 있지만 법을 어겼을때 받는 처벌의 강도가 '낮거나' '형평성이 없거나' 하는 부분이 있는 듯 합니다. 

태국은 호텔격리만 허용을 한다더군요. 푸켓지역은 sandbox 지역이라고 해서 호텔내 격리가 아니라 그 푸켓지역내에서 격리할 수 있도록 해서 격리자들이 자유롭게 생활도 하고 소비도 할 수 있도록 운영중입니다. 재밌는 건 태국은 작년과 올해초까지는 태국국적인들의 호텔격리비용을 정부에서 부담한 걸로 알고 있는데요. 저의 지인도 올해초 해외에서 입국했을때 격리호텔비용을 내지 않고 14일 격리를 했었습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자국민에게도 호텔비용을 부담하라고 하더군요. 문제는...

호텔비용이 거의 35,000밧 (1,500,000원) 정도인데요. 일반 태국인의 한달월급, 저연봉자의 두달월급 입니다. 내가 월급이 300만원인데 호텔비를 600만원 강제로 내는 셈이라 여기서 오는 부담이 적지 않을 것 같습니다. 당장 150만원 내 돈 내라고 해도 선뜻 내기 힘들 것 같은데요.
저의 태국지인중에 한국농장에서 일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일당이 계속 상승하고 있다고 하더군요. 한국입국이 어려워 외국인노동자공급이 부족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일당이 계속 오르고 있다고 하네요....
8만원 받던 일당이 10만원이 되었다고 좋아하며 사진을 보내 왔습니다. 
그런데 농장 하루 일당이 10만원이면 그것도 나름 많이 받는 것도 아니긴 합니다. 오전 5:30에 집을 나서야하고 거의 오후 3~4시 경에 마치더군요. 그럼에도 일할 사람이 없어서 80세된 할머니도 있고, 50대 60대도 많다고 하네요. 힘을 좀 쓰는 젊은 사람은 외국인뿐이라고 합니다. 

태국의 하루 농장 일당이 300~400밧 인데 한국에서는 3,000밧을 받으니 동남아인력들이 몰리는 구조일 수 밖에 없습니다. 

이전에 호주에서도 한국사람들이 농장가서 일을 많이들 했었는데, 비슷한 개념이라고 보시면 될 듯 합니다. 지금은 한국의 물가와 임금이 동남아국가에 비해 격차가 많아 졌습니다. 

또, 이전 제조관련 일을 하면서 외국인인력사무소 관리직원들과 가끔 이야기를 할 기회가 가끔 있었는데요. 코로나상황이 발생하고 나서는 외국인인력이 많이 부족하다고 합니다. 한국에 들어올 수가 없으니까요. 그러다보니 한국제조업체들 외국인인력 수요는 많은데 공급이 못 따라가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고 합니다. 

제가 보기에는 코로나 격리상황으로 인해 국가간 이동이 현저히 줄어 들었을 겁니다. 한국에 있는 외국인노동자들은 자의반타의반 한국에 계속 머물러야 하고 귀국도 쉽지 않은 상황인 듯 합니다. 

코로나확산을 방지하려고 정부에서도 최근에는 불법체류외국인에 대해서도 단속도 거의 하지 않고, 불법체류외국인들에게도 비자나 외국인거류증 확인하지 않고 여권확인만으로 백신을 접종해 주더군요. 왜 불법체류외국인에게도 백신을 접종해줘? 라고 단편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분명히 있을 것 같은데요. 거시적 관점에서 보았을때 그들을 단속하지 않고 백신을 접종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현상황에서는 도움이 된다고 판단을 한 것 같습니다. 


특수화장, 모델, 미용실 하고 있는 샤오위양 근황 차이컬쳐스터디

오늘은 오랜만에 샤오위양 근황을 소개해 보겠습니다. 

대만지방도시에서 타이베이로 와서 미용기술관련 전문대학교를 미용실에서 일하면서 졸업하고 지금은 대만의 남쪽도시에서 미용실도 하고 각종 특수화장, 모델 뭐 이런걸 하고 있는 것 같더라구요. 자세히 미주알고주알 물어 보지는 않았지만 미용실도 그렇고 아직까지는 수입적인 측면에서는 그다지 좋지는 않은 것 같았습니다. 아직 젊고 시작한지 얼마되지 않았으니 꾸준히 잘 하다보면 언젠가 나아지겠죠.
지켜보면 샤오위양은 참 열심히 노력하는 유형입니다. 그래서 영어를 배울 수 있도록 도와도 주곤 했는데요.
타이베이의 미용실에서 일하면서 학교다니고 하던 시절을 지켜보면, 샤오위양 정말 힘들게 살았죠. 미용실에서 제공해주는 기숙사에 세탁기가 없어서 손빨래하며 생활했었고, 초창기 미용실에서 근무를 할 때는 헤어디자이너가 아니라 머리 감겨주는 보조일로 시작을 했었거든요. 가뜩이나 미용실 근무시간도 길고 박봉인데, 먼저 도착해서 영업준비하고 영업이 끝나면 미용실에 남아서 기술배우고 하더라구요. 그리고 쉬는날에는 학교가서 수업하고... 
인생을 지금까지 살아오다보니, 확실히 부모님이 경제적으로 부유한 건 무언가를 배우는데 있어서 도움이 되기는 합니다. 
만약 샤오위양의 부모님이 경제적인 여유가 좀 있었다면 학생시절 굳이 일을 병행하면서 학교를 다니지 않아도 되었겠죠. 부모님이 도와줄 여력이 많았다면 많은 또래 학생들처럼 외국에 있는 대학에 가서 공부하면서 영어를 배웠겠죠. 저한테 무료로 일주일에 한번 수업듣는 그런 형태로 영어를 배우는 것 보다는 훨씬 빠르게 배웠을 겁니다. 
내일모레면 나이가 50이 다 되어가는 이 시점에서 제 인생을 돌이켜 보더라도 (절대 불평하는 것 아님...) 20대 학창시절 경제적인 여유가 있어서 중국어도 그렇고 영어도 그렇고 단 한번이라도 그 나라에서 대학교 같은 곳에서 공부를 해 보았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대학은 못 갔더라도 1년 이상 외국에서 정식교육기관에서 공부를 해 보았으면 좋겠다는 아쉬움이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저는 중국어도 영어도 한학기 어학당 수업만 한 것이 전부라 나머지는 그냥 독학하거나 일하면서 배웠습니다. 그러다보니 제가 느끼기에는 아직도 많이 언어능력이 부족합니다.

어느 분야에서든 좋은 지도자, 좋은 멘토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차인는 많이 나게 마련입니다. 
불평을 하려는 것이 아니라 저도 한번쯤은 20대 학창시절 외국에 대학에서 정식적으로 공부를 했으면 지금 나의 중국어나 영어실력이 지금과는 또 다른 수준일 수도 있고, 반평생 언어를 배우기 위해 희생한 시간과 기회비용이 이렇게나 크지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은 해 봅니다. 
미용실은 본인이 개업을 한 것이 아니라 친구가 운영하던 것을 맡아서 운영하는 것 같더군요. 그래서 월급제가 아니라 본인이 번 수입을 친구와 나누는 그런 방식이라 고정수입이 없는 것 같더군요.

고정수입이 없다는 것이 참 사람 피말리는 것이죠. 대략 2007년부터 거의 10여년간을 대부분 고정수입 없이 프리랜서, 자영업 형태로 살아와서 저 심정은 이해를 합니다. 그러다보니 수입이 된다고 생각이 되면 뭐든지 기웃거리게 되죠.
어차피 자영업과 프리랜서 형태의 삶은 미래의 희망을 보고 노력하는 것이라, 당장 수입이 적고 불안정해도 그걸 감내해야하긴 하는데, 그 암흑의 터널이 언제 끝날지를 모르니 힘든거죠. 샤오위양도 사회에 나온지가 얼마되지 않은 사회초년생이라 많은 사람들이 한번씩은 겪어야할 것들을 겪는 과정일 겁니다. 

그래도 또래 나이에 비하면 엄청 열심히 살아온걸 직접 봐 왔으니 잘 할겁니다. 

제 주변에 좋은 환경속에서도 인생 후비적 거리며 사는 사람이 16명이나 있어서 그런 부류에 비하면 더 잘 될거라 믿습니다. 
대만 떠난 뒤로 자주 연락 안 하다가 최근에 남쪽도시에서 미용실 한다고 해서 연락 한 번 하고 아주 가끔 근황만 주고 받았는데요. 최근에 조금 어려운 일도 겪어서 웃으면서 "하루하루 엄청 열심히 살아야 해" 라고 하더군요. 

영어를 다시 배우고 싶은데 여건도 안 되고 돈 버는데 사용하는 시간이 너무 길다고 하더라구요.

이번 하반기때 대만의 대학원에 입학해서 대만들어가시는 저의 블로그 이웃이 계신데요. 그 분 지난번에 만났을때, 샤오위양과 자주 교류하면서 영어도 가르쳐주고 중국어도 배우시라고 말씀을 드렸는데, 꼭 그렇게 서로 도움주고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소개해달라고 보내온 사진들이 많은데 다 올리지는 못 했네요.

해 온 노력이나 가지고 있는 재능에 비하면 아직은 젊은 사회초년생이라 결실을 맺기 까지는 시간이 좀 더 걸릴 것 같습니다. 배우고 싶다는 영어도, 사실 경제력만 좋으면 외국에 나가서 배우면 더 빨리 배울 수도 있죠. 그런데 그럴 여건이 안 되니까 삶이 조금은 더 고달픈 거구요.

샤오위양이랑 스터디할 때 한번은 샤오위양이 엄청 힘들어 했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그 때 제가 "포기하지 말고 꾸준히만 하고 있어라. 그러면 너는 반드시 성공한다. 대부분의 80% 사람들은 인생을 후비적거리며 살고 있으니 그 사람들보다 더 잘 되는 건 의외로 쉽다" 라는 논지로 이야기를 해 준 적이 있는데, 열심히 살고 있는 샤오위양이 꼭 자신이 원하는 분야에서 잘 되기를 응원합니다. 

무.엇.보.다. 
저는 저와 좋은 인연을 맺은 주변 지인들이 다 잘되고 다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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