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친구가 보내준 이전 제가 만든 인형 차이컬쳐

지난주인가, 저의 중국인 친구가 보내준 사진인데요. 자신의 친구인가 친척인가의 딸이 미국으로 유학갔는데, 저 중앙의 녹색인형을 미국까지 가져가 인증샷을 보내 왔다고 저 사진을 보내왔습니다. 

그러면서 그 중국인 친구와 제가 잠시 저 녹색인형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었네요. 10년여전 제가 중국에서 저 인형을 기획하고 만들때 그 중국인 친구가 쟤를 한 박스인가? 팔았거든요. (같은 지역에 있었습니다)

저 녹색인형이 제가 회사 그만두고 자영업을 하면서 중국으로 제조하러 들어가서 만든 첫 제품입니다. 그래서 다른 어느 제품보다 저에게는 의미가 있고, 아마 저의 집 어딘가에도 쟤가 하나 정도는 기념으로 남아 있을 겁니다. 

제조업하다 실패해서 당시의 제품들만 보면 만감이 교차하긴 합니다. 지금은 웃으면서 이렇게 이야기를 하지만 그 당시 실패하고 나서는 한동안 많이 정신적으로 힘들었었죠. 아마 그 힘든 시기에 저 사진 봤으면 지금같은 느낌이 아니었을 겁니다. 

당시 디자인은 저의 디자인 하는 여직원들하고 함께 했고, 저 녹색천과 검은색줄무늬천은 제가 직접 가서 보고 비교하며 골랐죠. 첫제품이라 경험이 없어서 나쁘지 않았던 제품임에도 이익을 보지 못 한 아픔이 있는 제품입니다. 저 제품을 10년이 넘은 최근에 갑자기 보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지금도 기억 나는 것이 산동성 어느 박스만드는 공장가서 포장박스 만든다고 쫓아다닌 것 까지 생생하게 기억이 납니다. 
위의 사진은 방콕의 어느 원단도매시장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중국도 각 지역마다 저런 원단도매시장이 있죠. 저는 산동성의 원단도매시장지역인 即墨지모(세월이 지나 한자가 맞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검색이 귀찮아서...) 라는 곳도 자주 갔었는데요.

저의 업무경력 배경은 제조입니다. 제조에 입사를 했고, 자영업도 제조기반으로 했었고, 지금도 제조업에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지금 여기 태국회사에서 업무를 지금까지 할 수 있는 근본힘도 저의 나름 산전수전 겪은 제조업 업무경력인데요. 저는 태국어도 못 하고 심지어는 지금 저의 회사에서 만든 제품을 해 본 적도 없었음에도 1년을 버티면서 할 수 있었던 건 다른 직원들보다는 조금 더 실전경력과 경험이 있기 때문이죠.
오늘 고객사 실사준비로 저의 회사 자회사(같은 제품군인데 저가형 제품 생산)를 다녀 왔습니다. 저의 회사가 인수를 해서 지금은 저의 회사직원들이 상주도 하고 같은 회사처럼 함께 일을 하고 있는데요. 저는 처음 와 봤습니다. 

아무튼 여기 올 때 함께 온 저의 회사 직원이 "이 회사 공장 가시면 깜짝 놀랄거에요. 우리 회사랑 비교하면 너무 낡고 '가내수공업' 하는 느낌이 들겁니다" 라고 해서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갔는데, 정말 규모나 시스템, 내부 환경 등이 많이 차이가 나더군요.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저는 대체로 중국에서 정말 소자본으로 제조를 했었고, 늘 작은 규모의 거래처와 업무를 많이 해서 지금 보이는 이 정도 규모는 아주 크게 느껴지거든요.

당시에 자영업할 때는 운영자금이 너무 없어서 자재소싱하거나 거래처공장 갈 때 (중국은 땅이 넓어 이동거리가 길거든요) 정말 연식이 오래되고 부식이 다 된 다마스 같은 차량을 장기임대해서 타고 다녔습니다. 당시 중국제 다마스 같은 차량은 '안전'과는 아무런 상관 없는 그런차였거든요.

한 번은 왕복 8시간 정도 되는 원자재공장을 갈 일이 있었는데, 도저히 8시간을 그 다마스 같은 낡은 차량을 타고 다녀올 자신이 없더군요. 차가 부식이 있을 정도로 낡은 차였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에 운영자금은 많이 없고 돈을 차렌트 하는데 쓰기는 싫고 해서 그 차를 타고 왕복을 하고 왔는데, 참 힘들더군요. 그럼에도 자영업을 할 때는 늘 언젠가는 내가 만든 제품이 잘 팔려서 성공을 할 수 있겠다는 희망을 가지고 일을 하니 극복도 되고 즐거웠습니다. 
저기 대만국기가 걸려 있습니다. 

중국에서 제조할 때는 참 재미있었습니다. 아주 영세한 규모의 제조라서 오늘 보고 온 저의 자회사 공장은 궁궐처럼 느껴 질 정도로 영세했었고, 늘 운영자금이 부족해서 월급날 직원 월급 줄 걱정, 원자재 살 자금흐름이 안 돌까 걱정 등등... 그 당시 출장을 가도 그 지역에서 정말정말 싸고 허름한 호텔에서 지내다가 호텔방에서 쥐가 돌아다녀 숙박비 안 낸 이야기도 여기 차이컬쳐 어딘가에 보면 있습니다. 

최근에 정말 오랜만에 저 녹색인형을 보니까 만감이 교차하더군요. 2008년도 세계금융위기로 환율변동만 없었어도 뭐 어찌 좀 버텨볼 수 있었을 텐데, 당시 1위안에 125~130원 하던 것이 (기억으로는) 200원을 넘었었으니까요. 저는 185원 정도에서 사업을 접었던 걸로 기억하며, 당시 발주 몇 개에 계약금 30% 걸어 두었는데, 그 것들도 다 날렸죠.  70%를 주고 물건 가지고 오는 순간 더 적자가 나는 구조였으니까요.

저 녹색인형도 꽤 괜찮게 만들었는데, 제가 경험이 없어서 박스크기를 너무 크게 만드는 바람에 운송비에서 이익을 다 날려 버렸죠.

지금은 나름 큰 규모의 제조업체에서 왠만한 한국기업보다 더 좋은 대우와 환경에서 제조를 하고 있지만, 늘 저는 중소기업, 개인기업, 그리고 제가 자영업 하던 시절의 제조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아마 지금 왠만한 제조회사에서 차장, 부장급 정도 되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해 보지 못 했을 경험도 가지고 있거든요. 저처럼 힘든 경험을 하라는 것도 아니고 그게 좋다는 것이 아니라, 저는 그런 경험들이 있다보니 현재의 삶이 늘 감사하고 고맙습니다. 저는 인생수업료를 참 많이 냈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실제 비용도 많이 썼고, 사업을 하다보니 이런저런 사기도 많이 당했고(고소해서 원금 다 받아 낸 적도 있고) 기회비용도 많이 날렸던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소중한 것들을 너무 많이 잃었죠. 

그리고 사업한다고 주위 많은 분들께 힘들게 한 것도 있고, 상처도 주고 해서 세월이 지나니 그 분들에게 미안한 마음도 들고, 다들 기억은 하고 있는데 또 세월이 지나니 그 분들을 만날 일도 없고 만나 지지도 않는 것이 인생인가 봅니다. 

저 인형 하나 만들려고 중국 구석구석 싸다고 하는 곳 다 돌아 다녀 보고 했네요.  제품 광고지를 만들어야 했었는데, 한국에 있던 디자이너가 사진 보내달라고 해서 조명이 좋은 스타벅스가서 사진 찍은 기억도 나구요. 

가끔 인터넷 보면 회사 그만 두고 개인사업 하겠다 직장인 체질이 아니다 이런 말씀을 하는 분들이 계신데요. 제 경험상 직장인의 고통이 치아 스켈링 하는 고통이라고 하면, 자영업은 나의 폐부를 칼로 찌르는 고통입니다. 또 많은 분들이 초기투자금만 가지고 시작을 하는데 운.영.자.금. 적게 들고 저처럼 하다가는 하루하루가 지옥일 수 있으니 정말 잘 생각하셔서 시작하세요. 

* 얼마전 중국친구가 보내 준 저 사진 보고 나니 며칠간 당시의 수 많은 힘들고, 슬프고, 괴롭고 또 그러면서 마음 한켠에 늘 붙잡고 있었던 희망도 생각이 나더군요.

태국의 로이크라통loy krathong 축제에서 등불 강에 띄운 후기 외국계기업 태국주재원

태국의 로이크라통loy krathong 전통축제에 가서 위의 사진처럼 등과 향이 있는 배를 물에 띄워 보내 보았습니다. 

로이크라통축제는 저런 등불을 물에 띄워 보내는 축제인데요. 송크란축제 이후로 가장 큰 전통축제에 참가를 해 본 것 같습니다. 

휴일은 아니라서 회사를 마치고 회사에서 가장 가까운 절 중에서 강에 인접해 있는 절로 갔습니다. 물론 저는 회사 주변을 잘 몰라서 회사직원과 함께 갔습니다. 
회사에서 멀지 않은 곳이라 저의 회사 근무복을 입은 직원들도 많이 보이고, 주변에 여러 회사에서 온 듯한 여러 회사의 근무복직원들도 많이 보이더군요.

주변은 완전 전통야시장 느낌입니다. 
큰 도로에서부터 경찰들이 차량통제를 하더군요. 주차장에 차들이 많더군요.

음식도 팔고 이런저런 공산품도 파는 모습입니다. 
원래는 가는 길에 있는 버거킹에서 햄버거 하나 먹고 가려고 했는데, 함께 갔던 직원들이 '거기 가면 먹을 것 많이 판다' 라고 해서 약간 허기진 상태로 왔는데 이런저런 음식들을 많이 팔더군요.
평소 야시장 같은 곳에 가면 보이던 저 동그란 핫도그를 하나 사서 먼저 허기를 달랠겸 먹어 보았습니다. 

아직 태국길거리 음식들이 완전히 친숙하지 않은데, 태국직원들과 함께 오니 먹게 되더군요.
이렇게 아이들과 함께 뭘 만드는 곳도 있습니다. 이 날은 태국사람들에게는 하나의 축제더군요. 아직 제가 태국언어도 문화도 잘 몰라서 완전히 와 닿지는 않지만 여기 살면서 이런저런 축제들 행사들을 찾아 다니며 체험해 보고 싶네요.

언어를 배우는 방법 중 하나가 문화를 빨리 이해하는 것이거든요.
오늘 행사의 주인공인 등불배가 있습니다. 종류도 다양하고 가격대도 다르더군요.
꽃이 많고 크기가 큰 것들이 가격이 조금 비싸더군요.
절에서 이걸 만들어서 팔고 있는 것 같더군요. 꽤 오랜시간 준비를 했을 것 같네요. 여기 보이는 것이 60밧(약2400원) 정도입니다. 

저는 첫번째 사진에서 보이는 등을 구입했습니다. 
여기 다리를 건너 저 쪽 강변으로 갑니다. 하늘에 보름달이 떠 있네요. 오늘 퇴근하는데도 둥근 붉은빛 도는 달이 참 아름다웠습니다. 
사람들이 불을 붙여 등불을 물에 띄워 보내는데요. 여기는 조금 높은 위치라서 위의 여자분이 손에 들고 있는...
여기에 등불배를 올려 놓고 물위로 내려 보내더라구요.
저도 태국사람들처럼 향과 초에 불을 붙여 봅니다. 
사람들이 저렇게 무릎을 꿇고 앉아 기도를 하고 물위에 띄워 보냅니다. 저기 물위로 떠 가는 등불들 보이시나요?

그리고 태국은 절이나 제단에 올라갈 때는 신발을 벗죠. 여기도 저렇게 신발을 벗고 이 구역으로 들어갑니다. 그 나라에 왔으면 그 나라의 문화풍습을 존중할 줄도 알아야죠.
이 쪽에서 등을 띄워 보내니 물의 흐름 따라 한줄로 저렇게 흘러가는 모습이 색다르더군요.

태국 스펀에 가면 등을 하늘로 날려 보내는 것이 있다면 여기는 강물에 등을 흘려 보냅니다. 
저의 회사 직원도 저렇게 무릎을 꿇고 등을 띄워 보내기 전에 기도를 하는 모습입니다. 
저도 저렇게 무릎꿇고 기도를 하고 등을 띄워 보내 봅니다. 태국에서 몸 건강히 사고없이 일 잘 하다가 귀국하게 해 달라고 기도를 했습니다. 

압니다. 기도가 소용이 없다는 건. 하지만 이런 행위를 통해서 마음이 편해지는 효과는 있죠. 꾸준히 요가를 한다든지 명상음악을 듣는 행위가 정신건강에 도움이 되거든요.
주변에 딱 이전 한국 불량식품아이스크림 팔던 느낌의 아이스크림 가판대가 있길래 또 냉큼 하나 사서 먹어 보았습니다. 
다양한 맛이 있더군요. 아주 이전에 동네구멍가게의 동그란 냉온아이스크림통에서 아이스크림 꺼내 먹는 느낌입니다.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그 옆에 있는 절로 가 봅니다. 이 절이 500년 정도 되었다고 하네요. 저기 시주항아리에
동전을 넣는 아이들 모습입니다. 여기 올 때 태국직원이 동전을 주머니에 가득 담아 왔더라구요. 그래서 저는 왜 가져가는지 몰랐는데, 이제 알겠더군요.
절에 들어가기 전 향과 꽃을 구입합니다. 딱히 가격이 정해져 있는 것 같지는 않았고 저걸 가지고는 시주함 같은 곳에다가 돈을 알아서 넣는 것 같았습니다.  저기 향 사이에 종이가 끼워져 있는 것이 보이시나요?
불상에 붙이면 되는데요. 저는 모르고 밖에 있는 불상에 모두 다 붙였는데...
안에 들어가니 붙여야 할 불상들이 더 있더군요. 아마 한 불상에 하나씩만 붙이면 되는 것 같습니다. 
또 여기 동전을 올려 놓는 돌이 있는데, 여기에도 그 금박을 붙이면 됩니다. 저는 동전 몇 개를 올려 놓았습니다. 제가 동전이 없었는데, 태국직원이 주더군요.
그 와중에 동전을 세워 보았습니다. 
저녁을 먹지 않고 온 상태라 거리음식을 먹어 보기로 합니다. 사실 혼자 왔으면 시킬 줄도 몰라서 시키기 쉬운 걸 먹었을 텐데 태국직원들과 함께 오니 이런 건 좋습니다. 테이블에 보이는 재료는 무제한으로 그냥 넣어서 먹으면 되구요. 메인 요리는...
얘를 시켰습니다. 얘를 시킨 후 저기 채소들과 소스를 아래처럼
넣어서 먹으면 됩니다. 저는 음식을 가리지 않고 아무거나 잘 먹는건 해외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큰 장점이라 생각합니다. 

뭘 먹어도 다 맛있습니다. 
방금 먹은 것이 양이 조금 적어 아쉬움이 남더군요. 그래서 다른 거리음식을 하나 더 시켜 봅니다. 
얘도 참 맛있더군요. 그리고 이런 야외에서 이런걸 먹으면 분위기도 좋고 맛있죠.

가족단위로 나온 사람들이 많아서 아이들을 위한 놀이 공간도 많았는데요. 위의 여기는 아무리 공기총이라고는 하나 안전장치나 총기 고정장치도 없이 저렇게 아이들이 총을 장전해서 총을 쏘는 모습입니다. 위의 보라색 옷 있은 저 꼬마는
총 좀 쏘아 본 모습이네요. 장총이든 권총이든 한 손으로 들고 쏘면 표적을 맞추기가 어렵습니다. 한 손으로 권총쏴서 멀리 있는 사람 딱딱딱 맞추는 건 영화에서나 가능한 일입니다. 저는 M16 쏘던 시절에 군생활을 했는데요. 표적이 엄청 작게 보이고, 특히 야간사격을 하면서 표적을 제대로 맞추는 건 정말 힘들더군요.

아무튼 평일 퇴근후라 오랜 시간 할애하지 못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데요. 회사주변의 절마다 사람들이 인산인해 더군요. 차가 엄청 막혔습니다. 
귀가하면서 절들을 보니 사람들이 엄청 많습니다. 그러다보니 차도 많이 막히구요. 그리고 제가 있는 곳이 외국인노동자, 태국입장에서 봤을 때는 미얀마인 근로자가 가장 많이 있는 곳입니다. 그래서인지 미얀마 전통복장을 하고 나온 사람들도 많더군요.

재밌는 체험이었구요. 태국1년차여서 아직 태국문화에 대해서 많이 배워야 하고 지금 언어도 열심히 는 아니고 틈만 나면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태국어 습득 스트레스가 좀 있네요)

또 태국에서 거주를 하면서 많은 곳을 가 보고 체험을 해 보고 싶습니다. 



야외에서 수건걸치고 샤워하는 태국 강변주거민들 외국계기업 태국주재원

저의 회사 근처에 강변(강이라고 하기엔 좀 그렇고 작은 하천) 주거지역이 좀 있습니다. 태국은 강변에 집들도 많고, 집이 물위를 덮는 형태도 많습니다. 항상 출퇴근을 하면서 보면 저기서 나와 세수, 양치, 저렇게 수건을 몸에 걸치고 간단한 샤워도 합니다. 

저렇게 여자분이 나와서 파란통에 담긴 물을 퍼서 몸에 붓는 모습인데요.
막힌 곳도 아니고 저렇게 빨간 옷을 입은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곳이고, 제가 있는 곳은 큰 길입니다. 그리고 그 옆에 5층 정도되는 건물들도 있구요. 그럼에도 저렇게 나와서 샤워를 하더군요.

그래서 태국지인에게 물어보니...
이렇게 사진을 보내주면서, 아마도 태국사람들에게는 저런 광경이 낯설게 느껴지지 않았을 건데, 제가 외국인이다 보니 오픈된 장소에서 저렇게 샤워를 하는 것이 신기하게 느껴졌을거다 라고 하더군요.

그러면서 방콕같은 도심에서 자란 자기는 또 주변에서 저런 장면을 보기는 쉽지 않지만, 도심외곽이나 저런 '수상가옥' 사람들은 위의 사진처럼 저렇게 샤워를 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하더군요. 위는 태국지인이 참고하라면서 보내준 사진입니다. (사진의 퀄러티를 봐서는 영화나 드라마의 한 장면 같네요)
이런 곳을 다니면서 태국지인들에게 물어보니 이런 수상건물에서 사는 태국사람들이 많다고 하더라구요. 저런 곳은 화장실도 그냥 물로 바로 떨어지는 곳이 많다고 하는데요.

태국영화 중 지난달에 재미있게 본 The teacher's diary(선생님의 일기 2014) 에 보면 수상가옥이 그 지역의 학교인데 화장실이 저렇게 뚫려 있고 그 아래가 그냥 물입니다. 

사진 바로아래에는 약간의 영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이 영화를 보실 분도 계실까봐 스포부분은 글자색을 흰색으로 바꾸었습니다. 마우스 드래그 하시면 내용이 나옵니다. 유튜브에도 보니까 영화가 있네요.
이 영화에서 보시면 여기 학교 여자선생님이 여기서 용변을 누는데 바로 아래 물에 떠 있는 시체의 얼굴이 있습니다. 이 지역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수장을 하는 풍습이 있는데, 하필이면 그 시체가 떠내려가지 않고 딱 저 지점에 걸려서 선생님과 학생들에게 공포감을 주는 장면이 나오며, 영화의 주인공 여자선생님이 그 시체를 치우려고 직접 물에 들어가는 장면도 나옵니다. 

태국의 주요 문화 중 하나인 수상가옥, 또 수상시장. 가끔 그런 가옥중에는 건물내에 목욕실이 없어서 소개해드린 사진처럼 외부에서 저렇게 샤워를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하네요.

제가 아주 어릴적 저의 시골할아버지집에 가면 시냇물이 조금 고여있는 빨래터가 있습니다. 해가 떨어지면 항상 여자분들은 거기가서 빨래하면서 몸도 씻고 했는데, 밤에 여자분들이 몇 명 모여서 거기로 빨래감을 들고 가면 남자들은 알아서 자리를 피해주는 그런 문화도 있긴 했습니다. 

지금 제가 읽고 있는 인류학책이 있는데요. (분량이 좀 많아서 시간이 꽤 걸립니다) 아무튼 이 책을 보면 최근 몇 백년간 여러나라들이 공중위생, 의학, 도시인프라들이 비약적으로 발전을 해서 우리가 생각하는 것 보다 훨씬 많은 인구들이 전기, 상하수도, 기초의료, 기본교육 등의 혜택을 받고 있다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인구가 비약적으로 늘어 10억 이하의 인구가 최근에는 70억으로 늘었죠. 

내가 어느 환경에서 살고 있느냐에 따라서 저런 통계적 수치적 체감이 다르게 느껴지는데요. 중국에 살 때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기초교육도 못 받고 힘들게 살고 있다고 생각을 했었지만, 캐나다나 호주에 지낼때는 거리 청소부도 오클리선글라스를 쓰고 청소를 하는구나(청소부라고 오클리선글라스를 낄 수 없는 수준이라는 뜻이 아니라 아주 어릴때는 오클리선글라스 하면 많이 비싼물건 이라고 생각을 했었고, 당시에는 청소부는 급여가 낮은 직업군이라고 교육을 받았었습니다. 학교 선생들이나 부모들이 공부 열심히 안해서 좋은 대학 못 가면 청소부나 한다고 가르쳤....)라고 생각을 하게 되는데요.

저는 중국, 태국에서 지내면서 아무래도 경제적으로 낮은 사람들을 많이 봐서인지 비율이 좀 높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그러다보니 저는 또 나름대로 '나는 그런것에 비하면 정말 행복하게 잘 살고 있는거야' 라고 불평을 덜 하게 되구요.

아무튼 그렇습니다. 다들 다 평등한 수준으로 잘 살면 좋겠지만, 어쩌면 인류가 멸망하기 전까지는 영원히 이루어질 수 없는 부분이라 생각을 합니다. 계급이나 소득차이가 없던 수렵채집사회에서 농경사회로 접어 들면서 '곡식을 비축' 하는 시대부터 빈부의 격차와 그로 인한 신분격차가 시작이 되었다고 하죠. 그래서 미래에도 재화는 개인별 비축을 하는 시스템이 유지가 될 것이고, 그러면 빈부격차는 미래에도 계속 존재를 하기 때문에, 경제적인 부분은 내 위와 비교하며 사는 순간 평생 불행해 지는 겁니다. 남들과 비교하지 않고 내 인생 내 기준에 맞게 살아가는 지혜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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